오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 봄 아지랑이가 가득했던 곱돌계의
봄이 오면 내가 살던 예산군 곱돌계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집 앞 달력이 형님네 논에서는 뚝새풀이 한가득 군락을 이루고 불어오는 봄바람이 살랑이고 우리 집 앞 꼭대기 할머니네 마늘밭에서는 겨우내 추위를 뚫고 덮어 노은 짚풀 사이로 뾰족이 마늘의 새순이 올라온다.
여기저기 겨우내 움츠렸던 농부들은 저마다 바쁘게 농사준비에 빠삐 움직이고 성격 급한 병연이 아버지는 쩔뚝이는 다리로 마차를 끌고 서청구레 논으로 달려가 써레질로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뿌릴 준비를 서두르셨다.
그 무렵 귀곡국민학교 한쪽 귀퉁이 벤치 위에는 넝쿨이 멋진 등나무에 파란 잎과 함께 연보라색 꽃이 줄줄이 피어오르면 이제는 여름을 맞이하는 봄의 끝자락이라는 신호였다.
가끔 등나무 줄기가 시원하게 만들어준 그늘아래서 연보라색 등나무 꽃을 바라보며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들려오던 Carpenters의 "Yesterday Once More"라는 노래를 듣곤 했다.
우리 어머님은 봄이 오면 우리 집 감나무 아래 우물가에서 봄맞이 빨래를 하시고 텃밭 쪽 빨래 너는 곳에 겨우내 덮었던 이불을 널곤 하셨다.
또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 뒤쪽으로 이어지던 텃밭에 고추를 심고 각종 야채를 심으시려고 밭도 갈아 놓곤 하셨다. 겨우내 딱딱하게 굳어 있던 텃밭을 소가 끄는 쟁기로 쟁기질을 하셔서 땅을 갈아엎어 노으셨다. 막 갈아놓은 땅에서는 싱그러운 흙냄새가 진동했으며, 진한 황토색의 싱그러운 색으로 땅이 뒤집어져 올라왔다.
저 멀리 서청구레 쪽 논에서는 봄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왔으며, 그 서청구레논에서도 봄맞이를 하는 농부들이 바쁘게 쟁기질로 논을 갈아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이 가득한 논에는 개구리가 간밤에 산통으로 낳아 노은 올챙이 알이 군데군데 한가득 가득히 멀지 않은 내일의 개구리 탄생을 기다리며 차가운 논 물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곱돌계 동네어귀에서 귀곡리 귀곡국민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겨울을 뚫고 올라온 풀들을 밟으며 을지문덕장군이 그려진 가방을 둘러메고 등교를 했고 학교로 가는 길 내네 풀잎도 따고 개구리도 쫒으며,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냇가를 향해 돌팔매질도 하며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한 시간 넘게 허튼짓을 하며 등교했다. 저 멀리 귀곡리 산자락에는 울긋불긋 진달래가 피어올랐으며, 연두색 빛으로 산색이 변해가고 있었다. 귀곡국민학교 교문 앞 느티나무는 참새 주둥이 같은 작은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학교 뒤편 은행나무에서는 푸른 잎이 봄을 맞이하려 나오고 나무 복도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교실은 겨울 웅크렸던 추위를 날려 버리려는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친구들의 쿵쾅거리는 발소리에 나무복도 아래 조용히 머물던 먼지들이 너무도 얇은 교실 유리창으로 통과하는 봄 햇살에 가지런히 줄 맞춰 뿌옇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귀곡리의 우리들의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으며 그 봄과 함께 우리는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며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의 호흡을 길게 뱉어 내고 길게 이어지던 귀곡리 그 둑길을 육상경기장 삼아 이리저리 뛰며 그 시절의 봄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