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했으니 재즈 엘피 011
아트 페퍼의 ‘미츠 더 리듬 섹션'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
1992년 아날로그 프로덕션(Analogue Productions) 리이슈 NM/NM 기준
A면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Red Pepper Blues
Imagination
Waltz Me Blues
Straight Life
B면
Jazz Me Blues
Tin Tin Deo
Star Eyes
Birks Works
앨범 이야기
주디 갈란드는 1922년에 태어나 1969년에 죽었다. 어머니의 욕심을 따라 2살때부터 이미 무대에 섰고 이후 내내 이런저런 무대를 거치다 13살 때는 영화사 MGM의 전속배우가 되었다. 갈란드를 대표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는 갈란드가 중-고등학생일 무렵 찍어 1939년, 갈란드가 17살일 때 개봉했다. 그리고 갈란드의 1930년대는 우리의 2020년대와 많이 달랐다. 갈란드는 10대때부터 이미 각성제를 썼고 줄담배를 피웠으며 만성적인 폭력과 성상납에 시달렸다. 72시간 동안 촬영을 하고 4시간 자는 삶을 반복했을 정도.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아이는 커녕 어른에게도 잔혹한 삶을 살았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당연했다. 그 시절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자 어른들의 수단 정도로 취급 받았다. 인간이 이 정도의 존엄을 이 정도로 폭 넓게 얻을 수 있게 된 건 문명사회에서도 대단히 최근의 일이다.
당연하다고 한들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빈도는 빈도고 강도는 강도며 일상은 일상이되 고통은 고통이다. 이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수의 현대인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당연하다는 듯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렇게 일 하게끔 만든 삶을 영위하고 남은 약간의 돈으로 술을 마시던 중 그 삶이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자위한다. 그때도 그랬고 갈란드도 마찬가지다. 자의식이 없을 때부터 쏟아진 삶에 갈란드의 인생은 비틀어졌다. 삶은 피폐했고 50도 못 되어 죽을 때까지 방황했다. 일생을 마약과 술에 절어 살았고 사랑은 술과 마약처럼 잠시의 행복과 긴 고통을 남겼다.
하지만 갈란드가 남긴 자국은 활짝 웃으며 노래하는 순간들 뿐이다. 그 어찌나 잔혹한지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삶의 이면에는 유쾌하고 화려한 모습만 가득하다. 본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갈란드의 발랄한 걸음과 목소리만이 그녀의 전부처럼 보이고, 본면을 아는 사람들에게도 선명히 보이는 것은 이면뿐이다. 이 역시 오늘의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는 무표정한 사람들은 본다. 그리고 우리 역시 무표정하다. 세상은 무표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이 울고 있는 사람도 얼굴로는 울지 않는다. 세상이 그것을 원치 않는 것 같으니까, 밖으로 안 나가든 나가서 아닌 척 하든 어찌 되었건 누가 보는 앞에선 울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울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도 울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울지 않는다. 아무도 울지 않으니까 나도 울면 안되지. 마음 내어 놓고 우는 건 퇴근하고 집 가서 혼자 하는 게 적당하지.
갈란드에 비하면 아트 페퍼는 한결 상황이 좋았다. 그는 최소한 자기파괴적일 순 있었으니까.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파괴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까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192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죽었고 갈란드와 같은 시절을 겪었다. 야만이 당연한 시절을 살며 그는 당연히 해도 되는 것들을 했다. 그는 갈란드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노출되었다. 베니 카터(Benny Carter)와 스탄 켄튼(Stan Kenton)의 악단을 통해 10대때부터 무대에 오른 그는 그 무렵 재즈 뮤지션들의 향락적인 삶을 가까이에서 무차별적으로 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닮아갔다. 그 무렵 여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마약에 빠져들었고 여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했다. 자기파괴가 악행이 아니던 시절 예술가들은 재능을 보조할 영감을 위해 마약을 애용했고 페퍼 역시 절어 지냈다.
한동안은 젊음과 체력으로 버틸 수 있었고 마약은 그저 상승효과만을 가져왔다. 이 앨범은 그 젊음과 체력이 아직 충분할 때 나온 앨범이자 캄보 리더의 지위에 오른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온 앨범이다. 기세는 등등하고 촉은 예리하다. 화려한 연주는 물론 쿨 재즈 특유의 조화와 억제도 놓치지 않는다. 듣고 있으면 감탄할 때가 빈번한데, 연주가 뛰어나 그럴 때도 있고 그 연주가 정확하게 그치는 게 신기해 그럴 때도 있다. 가볍고 예리한 칼처럼 페퍼는 곡들과 앨범을 조각하고 재단한다. 감탄하며 듣다보면 이 이상의 무엇이 있을까 싶은데, 안타깝게도 페퍼에게 이 이상의 무엇은 없었다. 페퍼는 이 무렵에 절정을 찍고 이후 내리막을 걷는다. 1960년대 중반부터 페퍼의 앨범 공개 빈도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몇 없는 앨범의 질은 시큰둥한 수준이다. 30대 중반에 드러서며 젊음은 지나갔고 체력은 사라졌다. 마약의 폐해만 남았다. 그 시절 직전에 나온 이 앨범은 그래서 빛난다. 솟아오르던 폭죽이 터지는 순간, 곧 이을 어둠이 생각나지 않는 순간. 그 절정의 지점에 이 앨범이 있다.
그 언젠가 “어쩌면 가장 큰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산다. 삶을 능동적으로 조절할 용기를 가진 이는 흔치 않으며 우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참기 어려운 슬픔이 찾아와도 살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와도 산다. 세상의 파고에 휩쓸리면서도 살고 스스로의 모자름에 뜯겨나가면서도 살며 운명의 가혹함을 감내하면서도 산다. 결국 삶은 계속된다. 안 찾아왔으면 좋겠을 아침은 결국 온다.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일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때가 되면 막이 내리는 무대와는 달리 클라이막스가 지나간지 한참이건만 삶은 계속된다. 갈란드에게도 그랬고 페퍼에게도 그랬다. 내게도 그렇다. 나름 제법 많고 큰 고저를 겪으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 아무 것도 잊지 못했건만 다가올 무엇을 맞이해야 한다. 영화라면 이렇게 못 만든 영화가 또 없다. 끝나야 할 때 안 끝나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고역인데 그게 내 인생이니 거 참 고통스럽다.
페퍼의 삶 역시 이어졌다. 완전히 망가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야 했고 다시 무언가를 해야 했고 다시 삶을 살아야 했다. 먹고 살 방법을 마련해야 했고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챙겨야 했다. 페퍼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음악활동을 재개하여 1980년대 초반까지 제법 많은 앨범과 공연을 반복했는데, 그 무렵 앨범들을 듣고 있으면 전기 그의 앨범들과 그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한 사람이 낸 앨범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지경. 리듬을 피동적으로 따라가며 힘 빼고 간결하게 부르는 색소폰은 맹렬히 달리는 1956년작 ‘플레이보이즈(Playboys)’의 그것이나 진두지휘하는 1959년작 ’플러스 일레븐(+Eleven - Modern Jazz Classics)’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그렇게 직업으로서 음악을 다루는 페퍼의 모습은 음악이 전부인 시절 페퍼의 모습과 사뭇 다르게 보인다. 삶을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자세가 보인다. 그 배경을 알기 때문인지, 배경이 이야기의 얼개를 엮어줘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갈란드의 삶 역시 이어졌다. 야만적인 시절의 야만적인 세상에 무려 유아기부터 던져진 갈란드는 남들이 세상에 발을 디딜 나이 무렵에 이미 남들이 평생 모를 것까지 다 알았고 남들이 평생 겪을 상흔을 다 얻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되었다. 쇼비즈니스 인더스트리는 재능이 컸던 갈란드의 마이너스까지 소비했다. 평생동안 영화와 음반과 공연을 이어갔고 술과 마약을 달고 살았으며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겪었다. 사랑과 실패한 사랑, 짧은 위안과 긴 한탄이 반복되는 중에도 세상은 갈란드를 놓치 않고 방실방실 웃으며 노래하길 원했다. 갈란드는 1960년대에도 공연을 했으며 사진들이 남아 있고 그 속에서 웃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사진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옛날이긴 하지만 50도 안 된 사람 얼굴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 웃음 속에는 망가진 삶이 보인다. 그 웃음 속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삶이 보인다. 그 배경을 알기 때문인지, 배경이 표정을 유추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상당수의 야만을 극복한 시절을 살고 있다. 완벽하진 않고 아직 갈 길이 멀며 어디로 가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전보단 많이 나아졌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의 교사란 작자들은 별 시덥잖은 이유로 학생들을 때렸고 세상은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했다. 본드 부는 형들이 있었고 부탄가스 부는 누나들도 있었다. 그 시절 그 사회에는 온갖 형태의 폭력과 경이가 만연했으나 그 상당수는 내 세대에 이미 사라졌다. 타인에 의한 파괴빈도가 줄었고 자기파괴를 실천할 수단 다수가 금지되었다. 야만의 전부는 아니지만 제법이 사라졌고(대신 다른 문제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직전 세대보다도 문명화된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시절의 어느 밤에 겪지 못한 과거를 생각한다. 주디 갈란드의 인생, 아트 페퍼의 인생,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미츠 더 리듬 섹션. 어둑한 삶을 살며 반짝이는 순간을 이끌어낸 사람들과 결과물을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 거기와 여긴 다르다. 서로 다른 시절 서로 다른 세상에서 그들과 나는 다르며 심지어 그들 서로도 다르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소모당하며 방황하다 산화한 갈란드, 소모하며 방황하다 추스린 페퍼, 그리고 소모하지도 방황하지도 산화하지도 추스리지도 못하는 나. 야만의 예전만 못하건만 삶은 그대로 남았다. 불행하게도 그 어느 시절 그 어느 세상에나 삶은 남는다는 비극은 변치 않는다.
엘피 이야기
초판부터 잘 팔린 앨범이다보니 상태 좋은 퍼스트 에디션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저 유명한 앨범들의 퍼스트 에디션 프리미엄, 특히 블루노트 앨범들에 붙은 그것에 비교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으니 퍼스트 에디션을 들이는 것도 좋겠다. 모노 퍼스트는 1957년에, 스테레오 퍼스트는 1958년에 나왔다. 모노는 못 들어봤고 스테레오만 들어봤는데 그 정도 프리미엄 주고 살만한 가치는 충분하단 생각을 했다. 컨템포러리 특유의 ‘뭔가 날라간 듯한’ 소리가 매력적이다. 머큐리(Mercury)나 RCA의 앨범들처럼 오늘날 듣기에도 음질이 빼어나단 생각은 안 나는 소리지만 그 시절 소리, 그 시절 무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일 소리가 담겨 있다.
일본에서의 인기가 좋아 리이슈가 자주 나왔다. 1970년대 언저리에 나온 리이슈들의 가성비가 뛰어나며, 1980년대 물건들은 나쁘지 않은 정도. 싸게 듣기 좋은 방법이었는데 얼마 전 크래프트 레코딩스(Craft Recordings)의 리이슈가 나오며 의미가 퇴색했다. 1970년대에 나온 VG+ 정도의 물건인데 3만 원 언저리에 구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내가 가진 건 1992년 아날로그 프로덕션(Analogue Productions)에서 내놓은 리이슈다. 들어본 것들 중에선 이것의 소리가 가장 좋았다. 2012년 일본 ‘100% Pure LP’ 시리즈로 나온 것과 용호상박했는데 나는 조금 더 자극적인 이걸 남겨두기로 했다. 이쪽의 고음이 보다 선명하고 저쪽은 중역의 밀도가 좀 더 빡빡하다. 둘 중 무엇이라도 좋다. 구할 수만 있다면.
가장 최근 리이슈는 자주 컨템포러리의 앨범을 리이슈하는 크래프트 레코딩스의 물건이다. 2022년에는 모노를, 2023년에는 스테레오를 내놨다. 버니 그룬드먼(Bernie Grundman)이 마스터링했고 음질은 준수한 수준. 엄청 좋다고 까진 말 못하겠으나 3만 원 정도의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같이 들어볼만한 앨범들
1957년작 ‘모던 아트(Modern Art)’: 기량에 물이 올랐을 때 내놓은 앨범이다. 능수능란한 색소폰 연주가 돋보인다. 러스 프리먼(Russ Freeman)의 피아노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커버가 엄청 멋있다.
1981년작 ‘겨울 달(Winter Moon)’: 몇 없는 후기 수작이다. 앨범 내내 쓸쓸함과 회한이 묻어난다. 달려갈 때도 울면서 달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1959년작 ‘+11(+Eleven - Modern Jazz Classics)’: 마티 페이치(Marty Paich)와 함께 한 앨범이 몇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게 이것. 둘의 장점이 오롯이 어우러지면 이런 게 나온다. 페이치는 페퍼가 돋보이게끔 밴드를 지휘했고 페퍼는 밴드가 따라오게끔 끌고 나간다. 듣고 있으면 “괜히 명반이 아니네.”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쳇 베이커(Chet Baker)와 함께 한 1958년작 ‘플레이보이즈(Playboys)’: 가장 안 페퍼 같고 가장 안 베이커 같은 앨범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둘 다 신나게 달린다. 쿨보단 하드밥에 가깝고 서정보단 열정이 도드라진다. 둘이 이런 연주도 할 수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한 것임을 증명하는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