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우 Jul 24. 2018

26_아이는 부모가 인정해주는 만큼 자랍니다.

"네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놀이를 하는데 모자람이 없는지 보여줘."

160.

우리 집은 7층입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아파트 단지 정중앙에 있는 놀이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큰 뚜루뚜는 놀이터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주말이면 번갈아 아이를 데리고 나갑니다. 


아이는 놀이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작은 세계의 놀이만으로도 아이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보입니다. 

처음엔 다른 아이들과 말을 섞는 것도 서먹서먹해 하던 아이는 종종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합니다. 


그곳에는 이미 놀이터를 장악하고 있는 형들이 있습니다. 

형이라고 해봐야 고작 서너 살 차이지만, 

큰 뚜루뚜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들은 놀이터의 지배자들입니다. 

아내와 내가 버티고 있을 때엔 놀이터의 터줏대감들도 큰 뚜루뚜에게 매몰차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아이를 놀이터의 일원으로 받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161. 

큰 뚜루뚜는 놀이터에 혼자 가서 놀겠다고 합니다.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생긴 그 첫 번째 욕구를 받아들입니다. 

혼자 나가 놀라고 하는 건 처음이라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유난을 떤다고 하겠지만, 부모란 사람들은 죄다 이 모양입니다.) 

아내와 나는 선뜻 아이의 청을 들어줍니다. 

놀이터가 베란다에서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우리는 이따금 아이를 내려다봅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놀이터의 형들은 큰 뚜루뚜를 놀이에 끼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형들 사이를 기웃거립니다. 

언뜻 형들이 야속해보이지만 그건 비단 놀이터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불문율이 아닙니다. 

어느 곳에 가든 텃세가 있습니다. 

그런 게 없다면 근사하겠지만 새로 들어온 구성원에게 호의적인 집단은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새로운 세계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음을 입증해내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큰 뚜루뚜는 우울해보입니다. 

자기도 잘 할 수 있는데 왜 형들이 놀이에 끼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입니다. 

아내는 큰 뚜루뚜가 놀이터에 나갈 때면 따라가라고 내 등을 떠밉니다. 

나는 책 한 권을 들고 따라갑니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고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이따금 괴물놀이도 해주고, 함께 축구를 하기도 합니다.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나는 아이의 놀이에 참견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큰 뚜루뚜는 묘안을 내놓습니다. 

엄마에게 맛있는 과자를 싸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내는 아이의 의중을 알아차리지만 군소리하지 않고 과자를 선선히 내어줍니다. 

아이는 과자를 들고 놀이터로 갑니다. 


아내와 나는 베란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내려다봅니다. 

큰 뚜루뚜는 형들에게 과자를 건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수컷처럼 자신도 놀이에 끼어달라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과자를 먹는 동안에는 형들도 아이를 따돌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자를 다 먹는 것과 동시에 우호적인 분위기도 끝납다. 

다시, 아이는 놀이에 끼지 못하고 주위만 뱅뱅 맴돕니다. 

어쩌다 놀이에 끼어주어도 아이에게 돌아온 역할은 술래입니다. 


아내는 슬픈 큰 뚜루뚜에게 말합니다. 

“형들이 안 놀아줘서 속상하지. 하지만 과자를 주는 걸로는 마음을 살 수가 없어. 과자 먹을 때만 친하면 그게 뭐야. 네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놀이를 하는데 모자람이 없는지 보여줘. 그러면 형들도 끼어줄 거야.” 

하지만 큰 뚜루뚜의 얼굴은 펴지지 않습니다.      






162.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이따금 고개를 들어 놀이터의 지배자들을 은밀히 관찰합니다. 

왕초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쯤 된 남자아이인데,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성격도 좋아 보입니다. 

나는 왕초와 왕초의 무리들을 데리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몇 번인가 함께 공을 찹니다. 


남자들이 친해지는 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함께 땀을 흘리며 스포츠를 하면 됩니다. 

왕초는 야구 글러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번엔 글러브를 가져와 함께 야구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나는 왕초와 캐치볼을 하면서 공을 던지는 자세와 변화구 그립을 알려줍니다. 

아이들이 나와 왕초의 캐치볼을 구경합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왕초는 공을 던지는 법을 조금 만져주자 대번에 공의 스피드가 달라집니다. 


운동이 끝난 후에 나는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돌립니다. 

아이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큰 뚜루뚜는 살짝 기가 삽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붑니다. 


그 다음은 큰 뚜루뚜가 헤쳐 나가야 합니다.      






163. 

큰 뚜루뚜는 그 후에도 부지런히 놀이터에 나갑니다. 

차츰차츰 놀이터의 지배자들도 마음을 엽니다. 

1년 정도가 흐르자 큰 뚜루뚜는 놀이터의 막내로 받아들여집니다. 

비록 작은 세계지만 아이가 훌륭하게 적응해낸 것이 대견합니다. 


놀이터는 유치원보다 훨씬 거친 세계입니다. 

유치원이 온실이라면, 놀이터는 야생입니다. 


큰 뚜루뚜는 이제 놀이터의 일원입니다. 

아이가 형들과 어울려 뛰놀며 환하게 웃습니다. 

종종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형에게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큰 뚜루뚜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뚜루뚜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의 신입으로 들어옵니다. 

아이는 자신이 놀이터의 형들과 어울리고 싶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까맣게 잊고서는 

신입 멤버들을 박대합니다. 

야박하게도 주위를 뱅뱅 맴도는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큰 뚜루뚜에게 다가갑니다. 

“잘해줘. 너도 속상했잖아.” 

하지만 큰 뚜루뚜는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놀이에 신이 난 큰 뚜루뚜는 신입 멤버를 배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나는 신입 멤버에게 다가가 슬쩍 말을 걸어봅니다. 

아이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비죽 내밉니다. 

아예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표정이 슬퍼 보입니다. 

1년 전의 큰 뚜루뚜처럼. 

하지만 이 새로운 신입도 곧 놀이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돌고 돕니다.      






164. 

작은 뚜루뚜의 놀이터 입성入城은 거저 주어집니다. 

큰 뚜루뚜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당당히 놀이터의 일원이 되었다면, 

작은 뚜루뚜는 형의 보살핌 속에서 단박에 놀이터의 일원이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물론 작은 뚜루뚜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지만 말입니다. 


달리기가 뒤처져도,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형이 뒤에서 든든히 받쳐줍니다. 

어쩌다 놀이터의 터줏대감들이 작은 뚜루뚜를 구박이라도 할라치면 

큰 뚜루뚜가 득달같이 달려가 동생의 편을 듭니다. 


“야! 너 몇 살이야!”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남몰래 웃습니다. 

역시, 나이를 들먹이며 싸우는 것은, 정신연령이 취학전아동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어쨌거나 형 덕분에 놀이터에 수월하게 입성한 작은 뚜루뚜는 기세가 날로 등등해집니다. 

자기표현을 잘 하고 활발한 성격 덕분이기도 하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급기야 형의 친구들과 맞먹으려는 통에 작은 뚜루뚜는 형의 골칫거리가 됩니다. 

형이 제어하려고 해도 동생은 말을 듣지 않고 떼를 씁니다. 


동생도 동생이지만, 

큰 뚜루뚜의 입장에서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형은 동생을 혼내보지만, 

동생은 형이 자신보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만 같아 서럽습니다. 


놀이터의 일원이 되는 과정은 형의 덕분으로 수월했지만, 

동생에게는 또 동생만의 시련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어떤 점에서는 공평합니다. 


나는 골머리를 앓는 큰 뚜루뚜에게 말합니다.

“그래도 네가 동생한테 잘 해줘. 그래야 네 친구들도 동생한테 잘 해주지. 네가 함부로 하면 누가 작은 뚜루뚜한테 잘 해주겠어. 알았지?”

큰 뚜루뚜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큰 뚜루뚜의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165. 

무엇이든 처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에게 첫 번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시련이 지나가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가기 마련입니다. 

불안으로 그 소중한 기회를 유보하거나 소멸시켜서는 안 됩니다. 


아비는 그저 뒤에서 응원을 해주면 됩니다. 


일정량의 방황과 고난은 어느 삶에나 있습니다. 

아이를 아기처럼 대하면 아이는 성장을 멈출지도 모릅니다. 

아이지만, 

그래서 불안하지만, 

아이를 조금은 더 큰 아이처럼 대해주면 

아이가 접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도 더 많아질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인정해주는 만큼 자랍니다.      




김이을 작가의 육아에세이 '뚜루뚜뚜루뚜와 함께 한 10년'

다음 페이지

https://brunch.co.kr/@1716hanun/125


매거진의 이전글 25_첫째와 둘째, 그들의 입장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