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생각해 보자

(생각하는 능력의 세태를 생각해 본다)

by evan shim

인간은 무엇을 잘할까? 영국 박물관에 갔을 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원작은 프랑스 로댕 박물관에 있음)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다른 동물에는 부여하지 않은 전혀 다른 특성을 부여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만 특별히 부여한 달란트는 바로 생각하는 마음을 준 것이다. 인간이 창조된 시기를 생각해 보자. 아마 그때에는 실제로 헤라클레스 같은 거대한 힘을 가졌거나 또는 매머드처럼 거구의 체격 조건이 더 적합했을 텐데, 왜 조물주는 채 2미터도 안 되는 작은 인간을 만들어서 힘들게 살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된 시기에는 자기 자신을 지킬 칼도 총도 없을 시기였다.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기 힘든 가혹한 환경에서 인간은 던져졌지만 이를 타개할 대단한 능력 하나를 주었다. 성경에서 말한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생각을 하는 능력이었다. 이 달란트는 바로 조물주 자신에게나 있는 최고 만능의 능력인데 이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지 않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기능을 합쳐도 생각하는 능력을 이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것 하나만 주면 나머지는 그가 스스로 알아서 미래를 꾸릴 능력이 갖추어진다. 그리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성경 표현대로 한다면 보시기에 좋았다. 창조주의 의도대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도달했다. 인간보다 더 크고 무서운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절대 관리자가 되었다.


동물들을 다스리는 이건 실제로 작은 시작이다. 그는 계속 진화를 거듭했다. 돌도끼와 생활 도구를 만들고 이내 수레를 만들어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은 발을 붙이는 지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고 있는 지구를 다스리기 시작했고 어랍쇼, 이제 한술 더 떠서 아득한 거리에 있는 우주까지도 그가 탐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전개는 먼저 <생각>이 얼마나 대단하게 부여받은 상(prize)인 것을 알고 시작하자는 의도에서 이야기를 해본 것이다.




미래 마약(?)을 보는 그들



우리 소싯적 읽던 위인전이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든 과학자도 있었다. 말단 프랑스 포병 장교 출신은 대포의 포물선 궤적을 구상하여 유럽을 한 나라로 합병하려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친 아이가 변호사가 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이야기도 있다. 유치한 선박 12척을 가진 제독이 물길과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적을 물리쳐 해전의 영웅이 되었다. 그 외에도 그의 집의 주차장에서 컴퓨터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킨 인물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찌 세상에 우뚝 서게 되었을까? 해답은 앞에 벌써 나와 있다. 바로 생각의 힘으로 그리 된 것이다. 인류가 창조기부터 현재까지 끈끈이 이어 온 생각의 DNA는 이토록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생각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위대한 문명과 문화를 창조해 놓은 결과이다. 좋은 명기(바로 생각)를 제대로 쓴 사람은 위대한 인간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럼 반대로 허접한 생각이나 음모적 나쁜 생각으로 이어온 사람은 또 그들 나름대로 성공(?) 할 수도 있다. 한 달 전 마약왕이라는 칭호로 세상을 깜짝 놀래기도 한 사람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본 마약은 한 제국을 약 300년 동안 침체시키기도 하였다. 이처럼 생각은 세상의 공익도 되지만 세상을 멸망하기도 한다. 생각의 본질은 현상을 바꾼다. 그럼 어떤 생각을 해야 되나. 신이 준 대단한 능력은 우리가 쓰기 나름이다. 위대한 생각을 하면 그대로 위대해진다.


반면에 허접한 생각을 하면 우리 미래도 허접한 단계에 머문다. 그러니 기왕이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위대한 생각을 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헨리 포드가 말하듯이 ‘인간은 그가 되고자 하는 대로 된다’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요술 방망이라 잘못 다루면 재앙이 되기도 한다.


생각은 돈이 들지도 않고 힘든 육체노동처럼 땀을 뻘뻘 흘리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바르고 위대한 생각 발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극 소수의 위인, 영웅 그리고 성인군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능적 해결 능력을 가진 여의주지만 이 생각을 잘 되게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단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생각 자체를 멀리하려 하고 귀찮아하는 사람들이다.


말초적 즐거움에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요즘 세태는 생각도 외부 기기에 의뢰하는 현상까지 발전했다. “왜 그것을 낑낑대고 있어, AI는 언제 써먹을 거야”. 이런 주장도 힘을 얻는다.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 모두 스마트폰에 열중이다. 이런 요소들 모두는 우리의 생각하는 힘을 약화시키는 제약이 된다. 어떤 이는 이리 말하기도 한다. “차라리 노동은 하겠는데 생각을 나한테 강요하지 마, 정말 하기가 싫어”라고.


생각이 깊어지려면 어쩔 수 없이 지루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밥은 먹기 싫고 후식만 당기는 효과이다. 즉석문화라 할 수 있는 즉석 검색이 유행이다. 빠름이 미덕인 세상이다. 시간을 들여 생각도 하며, 스스로 기억해 내고 사유하는 힘조차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의 복원은 어찌해야 할까. 몇 가지 생각을 나도 해 본다. 의식적으로 무모한 시간을 가져 보자. 철학자가 하는 느린 산책처럼. 스마트폰 그만 보고 느린 종이책을 읽어 보자. 한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도 해 보자. 디지털 기기 대신에 종이책에 글 쓰기를 해 보자. 사회적으로도 해야 할 것이 있다. 본질적 질문을 하는 이를 존중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클래식 한 읽기, 쓰기, 토론 등의 서술 문화가 중시되는 교육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각의 능력은 엄청난 선물이다. 말초적 즐거움의 늪에서 빠져나와 생각을 되찾는 일은 단순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과정이라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 삶은 찰나의 자극에 반응할 뿐이다. 생각하는 삶만이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생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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