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때, 이른 때

시간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by 김인수 스테파노

늦은 때, 이른 때



시간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그렇다면 '늦은 때'나 '이른 때'가 없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제시간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지키는 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에 따라 다르게 흐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은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중력과 속도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지구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다르게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시간은 일정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사회적 구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자연의 주기를 기반으로 하루, 한 달, 한 해 등을 구분하고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을 만들어왔다. 인간이 만든 시계나 달력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을 규정짓지만, 이는 실제 자연의 흐름이 아닌 인간의 필요와 활동에 따라 설정된 기준이다. 결국 인간이 시간을 '재는' 방식은 존재하지만, 그 자체가 자연에 내재된 본질적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 시점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려고 한다. '어떤 일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는 개념은 사회적 요구나 함의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자연이나 우주의 흐름에서는 ‘늦었다’라 거나 ‘이르다’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거다.


나무는 봄에 새싹을 틔우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휴면 상태에 들어간다. 이 과정은 시간이 '이르거나 늦음'이 없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 인간의 기준인 ‘늦었다’라 거나 ‘이르다’라는 것 없이. 모든 일은 그 자체의 시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결국, 시간은 물리적인 사실이자, 사회적 구성물이 맞지만,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느냐는 사람의 시각과 경험에 달려 있다. ‘늦은 때’나 ‘이른 때’는 상대적일 수 있고, 모든 것은 그 자체의 타이밍이 존재한다. 조바심 낼 일도 이제는 없다만.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알던 사람? 내가 모르는 사람? 내가 모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