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어디로 갔는가

by 김인수 스테파노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이들이 소수임에도 다수로 보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드는 자들도 그들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 또한 달리 표현한 그들이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이들 모습이다.


어느 정치인의 발언이 버젓이 공중파에서 떠드는 모습을 보며, '후안무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의 전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논리다. 이런 궤변이 공공연히 나오는 현실 앞에서, '인면수심'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본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백성을 조공으로 바치려던 각료들에게 왕의 일갈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때 고개를 떨구며 부끄러워하던 각료들이, 작금의 인간들에 비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최소한 '부끄러워하는 시늉'이라도.


면목도, 양심도, 염치도 없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밥그릇 지키기만이 있을 뿐이다.

헌법과 민주주의, 국민의 뜻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1년만 지나면 뽑아준다”고 했던가.


자기기만의 집단최면은 더더욱 몰염치를 조장한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 감시하며 "누구나 그렇게 산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행태를 정당화하는건가. 마치 온 세상이 자신들처럼 염치없이 살고 있다고 눈 가리고 사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많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국민, 민주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들이 여전히 이 땅에는 많다. 그런데도 소수의 후안무치가 다수의 침묵을 틈타 사회 전체를 '부끄러움을 잊은' 집단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신의 선택이 국민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입을 열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가?" "내 발언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가?" "후세에 떳떳할 수 있는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그 뻔뻔함이, 정말 본심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 어리석음이, 정말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부끄러움을 되찾자.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양심'이다. 부끄러움을 잊은 자들을 어찌할 것인가. 후안무치요, 인면수심이어라. 부끄러운 줄 좀 알아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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