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기억의 거짓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 박사의 '거짓 기억 이론'

by 김인수 스테파노


기억은 늘 든든한 듯하다가도 어처구니 없는 배신을 한다. 그것도 곧잘. 마치 약속 잘 지키던 친구가 꼭 중요한 날 연락 두절인 것 같은 황망함 같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진이 기억과 관련한 실험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실제로 본 걸 기억하는 게 아니라, 보고 싶었던 걸 기억한다는 거다.’라고 결과를 내놓았다. 떠 오른 생각은 이랬다. ‘뇌는 블랙박스가 아니라 편집자다. 그것도, 가끔은 억지 효과 넣는 서투른 편집자다.’라고.


미국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는 한술 더 떴다. 아이들에게 “너 예전에, 쇼핑몰에서 길 잃은 적 있지?”라고 없는 이야기를 심어줬다. 그런데 며칠 뒤 아이들이 스스로 디테일을 붙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막 울고 있었어!, 나를 찾는 엄마 모습이었어.” 없는 추억에 색을 칠해 진짜처럼 들고나온다는 거다. 이게 엘리자베스 로프터 박사의 ‘거짓 기억 이론’의 전형이다.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에도 같은 맥락의 글이 있다. 하나의 사건을 반복해서 이야기 하면 할 수록 살아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고.


어지되었든 “내 기억이 맞을까?”라는 질문은 반쯤 허무하다. 뇌는 늘 리믹스를 한다. 아내가 “지난주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라고 묻는 순간, 모자를 쓰기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 나의 뇌에는 그 날의 기억 창고는 정리한 지 오래다. 어제 먹은 음식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지난주? 기억 창고에서 정리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입은 얼버무린다. “어… 좋은 얘기였지?” (살아남으려면 기억보다 센스가 필요하다.)


물론 기억이 늘 허술한 건 아니다. 핸드폰 둔 자리는 잊어도, 공구함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안다. 어제 저녁 식사 메뉴는 까먹어도, 자동차 과속카메라가 설치된 위치는 기억하고 있다. 뇌는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 작업을 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내 편’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하는 게 아닌거다.


결국 기억은 구멍 난 양말 같다. 허술하지만, 없으면 발이 시리다. 그러니 너무 집착할 필요 없다. 기억은 우리를 배신해도, 그 배신 덕에 인생은 조금 덜 지루해진다.


20250920-RV602751-2.jpg 20250920, 완도시외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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