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국에서 방문교수를 한 적이 있다. 미국 사람들도 깡촌이라고 하는 시골이었는데, 덕분에 아파트 렌트비는 적당했고 무엇보다 대도시처럼 치안이 나쁘지도 않아서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홀홀단신 모험을 떠났던 나는 나름 미국 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조그만 도시에 풋볼장, 아이스링크, 컨벤션홀, 대형 마켓, 극장 등 있을건 다 있는데, 재있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딱 1개씩만 있어서결정장애가 약간 있던 나에게는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유학생이 꽤 많아서 한국사람, 중국사람, 유럽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나름 구분이 되어있었는데, 부동산에서 집을 소개할 때 일부러 같은 나라 사람들을 모아놓는다고 하기도 했고, 혹은 일부러 각 나라 음식의 독특한 냄새 컴플레인 때문에 분리한다고 하기도 했다. 애를 둘 데리고 유학왔던 어떤 아줌마 학생은 디자인과 건축전공 학생들의 수업이 주로 있는 College of Design 건물의 뻥 뚤린 2층 로비에서 된장국을 점심으로 먹었다가, "어디서 이상한 X냄새가 나지않니?"라며 쑥덕거리는 코카시안 학생들로부터 무언의 비난을 받았으나 꿋꿋하게 끝까지 점심을 먹었노라며 자랑했었다.
대학도시라 인구도 5만 정도 되어서(지금은 6만이라 함) 흑인과 히스패닉은 거의 없는, 오직 코카시안과 아시안만 사는 교육도시이기도 했다. 그 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옥수수와 돼지이고, 돼지가 사람 수보다 많은 유일한 주라고 했다. 손님이 많아서 예약도 안되는, 그 소도시에서 나름 제일 유명한 Pork Rib Barbecue 집을 최근에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미국 돼지는 한국 돼지보다 엄청 크다는걸 립의 크기로 확인하였는데 정확하게 딱 2배다. 더불어 콕을 담아주는 컵도 2배. 비만이 많다는건 다 이유가 있다. 그곳에서 먹었던 바베큐는 한국에 와서도 잊을 수가 없어서 비슷하게라도 한다는 것이 우리 집의 최애 메뉴가 되었다.
영어는 공포다. 영어를 글로 배웠던 구세대인 나는 간신히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면서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가 미국에서 TA(Teaching Assistant)하면서 다시 학위를 하고 있는 선배가 학위 말쯤 면접을 보러 다니는 통에 휴강을 하게 되어 부득이 내가 몇 번 대강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영어로 수업이라니, 이런....... Mac Donald Drive Thru도 영어가 버벅대서 못 가는데...... 전날 밤 나는 수업 중에 해야 하는, 나의 입에서 나올법한 영어 말을 모두 타이핑해서 프린트까지 했더랬다. Hi로 시작하는, 말하자면 두 시간 수업에서 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영어 말들이 적힌 수업 커닝 페이퍼다.
"Myung(선배)이 Job Interview 때문에 내가 대신 Substituting 하는 거 들었지? 출석부가 없으니까 여기다 이름 list up 하면 어쩌고 저쩌고......" 어찌어찌 두 시간여의 수업을 진행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수업내용이나 과제가 비숫한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불평불만은 그 내용이 똑같았다는 것이었다. 전공이 같아서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에서 보이는 공통점이었던 것 같았다. 대표적인 불만은 제출 날짜가 너무 촉박하다는 것, 과제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 더불어 선생님은 이런 거 절대 안 봐준다는 것, 랩의 컴퓨터가 느려 설명을 쫓아갈 수 없었다는 것 등이다. 불만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단어나 어필하는 몸짓, 얼굴 찡그리는 것까지 똑 닮았다. 미국애들은 다를 줄 알았는데 이건 뭐지? 선배가 돌아온 후 얘기했더니 그런다. 다 똑같다고.
학생들은 영어도 버벅대는 Substituting 선생이 더듬거리는 설명에 낯설었겠지만, 나는 영어는 잘하는데 디자인은 버벅대면서 쏟아내는 학생들의 불만이 매우 친숙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