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갓 결혼한 새댁은 홀로 지방의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물론 남편은 자기가 결혼 전부터 살고 있던 서울 시댁에서 예전부터 그랬듯 어머니가 준비해 주시는 의식주의 혜택을 아무 불편 없이, 불만 없이 누리며 살고 있었다. 전생에 3대가 덕을 쌓아야 누릴 수 있다는 주말부부 그거다. 하지만 새댁은 주중에는 학교에서 일하느라 힘들었고 주말에는 남편이 있는 시댁으로 올라와 남편의 어리광을 받아주느라,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하느라 등골이 휘었다. 그래도 새댁은 어떻게 하면 시부모님께 칭찬을 들을까 머리를 쥐어짜느라 노력했으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결혼시킬 수 없다시던 친정엄마를 위해서라도 조금의 후회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일 수 없어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근무지는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동료 교수들의 말로는 그 항구도시 수협 공판장에 가면 신선한 생선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다고들 했다. 문제는 공판장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어 아는 사람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동료 교수들 몇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그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어찌어찌 나에게는 조기 한 궤짝이 넘어왔다.
아무리 막 잡아서 급랭하여 신선하다지만 새벽에 떼어와 오후에 학교 주차장에 모두 모여 펼쳐 보았으니 이미 살짝 해동이 되어가기도 했고 또한 포장도 변변치 않아서 차 트렁크에 싣기는 냄새가 밸까 걱정이 되었으나 신문지를 깔고 덮고 하여 내가 살고 있는 학교 근처의 임대아파트까지 가지고 왔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 출근 복장의 정장 차림으로 궤짝을 들고 올라왔으니 계단에서 누구 마주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사선으로 매어 엉덩이 뒤쪽으로 돌린 다음 궤짝을 들어 행여 옷에 닿을까 팔을 멀찍이 들고는 엉덩이를 있는 대로 뒤로 빼고 엉금엉금 올라왔으니 CCTV라도 있어서 누군가 봤더라면 가관이었을게다.
조기는 손바닥만 하였다. 일단 베란다에 내어놓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칼과 도마, 가위를 들고 본격적인 손질 작업에 들어갔다. 지느러미 자르고, 비늘 벗기고..... 얼어 있을 때는 많지 않은 것 같더니 해동이 되어 한 마리씩 뜯어놓으니 제법 많았다. 두어 시간쯤 걸리겠지 했던 작업은 새벽까지 이어졌는데, 잘린 지느러미와 비늘은 하수도 구멍에 막혀 계속 퍼내야 했으며, 어쩌다 눈이나 얼굴에 튄 비늘을 떼어내느라 고무장갑을 얼마나 벗었다 끼었다 했는지...... 깨끗하게 씻어 켜켜이 놓고 소금 뿌리고...... 새시 없는 베란다에서 11월에 새벽까지 바람맞으며 손질한 조기는 200여 마리가 넘었다.
친정과 시댁에 가져갈 조기를 똑같이 나누어 통에 담아 정리하고 씻고 나니 새벽 4시쯤...... 그냥 해동만 한 상태에서 다듬지 말고 나누어도 될 뻔....... 그냥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걸 다 손질하느라....... 미련 미련
조기꽃
다음날 바로 서울로 올라와 일단 가까운 친정에 들러 한 통을 내려놓았다.
"어쩐 일이야?"
"응, 엄마 내가 군산에서 조기 막 잡은 거 싱싱한 거 사 왔어. 선생님들이 산다길래 나고 껴서 샀지. 싱싱해서 맛있대"
"야! 그걸 어떻게......."
"내가 엄마. 밤새 지느러미 자르고 비닐 벗겨서 싹 손질했다?"
.
.
.
"미친년! 너 미쳤어? 네가 지방으로 왔다 갔다 얼마나 힘든데 밤새 이걸 해?"
".............."
반대한 결혼을 한 딸이 힘들게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시댁 살이를 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분명 시댁 것도 챙겨 왔을 테니 조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는 것도 눈치채셨을 테고, 밤새 베란다에서 추운 밤 콧물 흘리며 노동했을 딸이 모자라 보이기도 하셨을 테고, 그리고, 그 도도하던 내 딸이 맞나 하셨을게다.
친정에서 욕 한 바가지 먹고 이내 시댁으로 밤늦게 들어와 한 통을 내려놓으니 시어머니 왈,
"이게 뭐니?"
"예, 조기예요. 수협 공판장에서 잡자마자 급랭한 거 샀어요. 어머니 손질 안 하셔도 돼요. 제가 밤새 손질해 왔어요."
같은 어머니라서 그런가 두 어머니 모두 조기를 받아 들고는 모두 딸들 걱정이 앞서셨다. 한 어머니는 갓 결혼해서 당신을 떠난 딸이 밤 새 힘들게 노동했을 것을 생각하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걱정하셨고, 다른 어머니는 서울의 가까운 직장을 다니느라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수시로 끼니를 친정에서 해결하는 딸의 반찬 노동을 덜어줄 수 있어서 걱정하셨고.......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조기 통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으시던 시어머니 모습을. 내 기억으로는 "너 힘든데 뭐 이런 걸...." 하는 종류의 칭찬, 내지는 고맙, 이런 표현은 없으셨지만 어머니 성격으로는 아마 다음날 바로 일가친척들 전화 돌리시느라 꽤 바쁘셨을 테다. 기특한 며느리 자랑하시느라고.........
한 어머니는 밤새 힘들게 조기 손질하느라 피곤했을 애처로운 딸이 있었고, 다른 어머니는 맛난 조기를 해피하게 나눠먹일 금쪽같은 딸이 계셨다.
재밌는 것은 아직도 그때 그 조기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익히기만 해도 싱싱하고 담백함이 너무 좋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