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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지혜 Sep 09. 2021

유리고양이를 위한 츄르 만들기 : 회의

우울증에 빠진 네 곁을 지키는 법

  고양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어. 그중 최고는 역시 공부였지. 영상으로 된 강의를 보고, 온라인을 뒤져 간략한 정보들도 습득하고, 책도 찾아 읽었어. 한 번은 정말 큰 마음먹고 꽤 두꺼운 책을 집어 들었어. 바로 이것,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37417573


  무려 1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야. 아예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각 잡고 앉아 읽기 시작했어. 하루 종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도 나흘 동안 다 못 읽었지. 책이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 시큰대더라니까. 그래도 꽤 많은 부분을 읽어내렸고 '우울증'이란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 우울증이란 것에 대해 이해하고 싶고, 컴컴한 터널을 걷는 기분인 집사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해.


  책을 읽다 보니 우울에 대해 생각보다 참 가깝게 여기게 되었어. 내 주변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실은 모두 우울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물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말이야.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우울증 때문 아닐까?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우울증일 수도 있겠구나. 


  내 가까운 지인인 A씨는 일평생 불면에 시달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술을 마시곤 해. 영문 모를 불안에 떨 때가 많고 약간의 피해의식도 있지. B씨는 타인과 있을 때와 홀로 있을 때의 차이가 극명해. 아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법을 택하기도 할 만큼 괴로움을 호소하고. C씨는 통제에 대한 욕구가 강해. 조바심이 많고 인정 욕구가 강해서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때로는 그 불똥이 주변으로 튀기도 하지. 어때? 모두 심상치 않지? 모두 우울증 같아!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말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

  도대체 우울증이 아닌 현대인이 있긴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맥이 탁 빠지더라고. 한창 유행했던 단어인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처럼, 대관절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모르겠더라. 이 세상 모두가 우울증 환자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하는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너는 우울증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물론 비하나 폄훼의 마음은 없어. 그저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 도움을 받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근데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한창 발전 중인 정신의학계는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는데, 지금의 치료법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백 년 전쯤 정신질환 치료법이라고 자행되던 끔찍한 시술들은 이미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데, 지금의 것이라고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이 어디에도 없더라니까!

 

  한동안 회의적이었어. 결국은 개인의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하고. 뭐든 정해진 해답이 없고 여전히 진창을 걷는 기분이었지. 


  실은 아직도 잘은 모르겠어. 뭐가 답인지 도저히 모르겠어. 

  대신, 칠흑 같은 어둠에 눈이 좀 익숙해지고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여. 윤 나는 검은 털을 가진 우리 고양이의 도톰한 엉덩이 실루엣. 회의감과는 무관하게 당장 효과가 있는 알약이 있고, 그 약을 삼킬 의지가 있다면 뭐든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두렵다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잖아. 행여나, 혹시나, 나중에, 훗날. 다 필요 없는 소리 같아. 그저 우리에겐 '지금'이 있을 뿐이고, 나는 고양이의 등을 쓸어줄 수 있으니까. 


  함께 답을 찾아보자. 답이 없을 수도 있단 걸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저 같이 있자. 절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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