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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지혜 Dec 10. 2021

유리고양이를 위한 츄르 만들기 : 원망

자기 연민

또 오랜만이야!

지난 글을 남긴 것도 간신히 감정을 정돈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그 글을 읽으니

또 눈물이 나더라.


왜 눈물이 나는지 이야기하려고 해.

도대체 원망이 어느 정도였기에 걸핏하면 눈물바람인지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고.


나의 임상상담사 선생님은 무척 객관적이면서도 에너지가 있으신 분이었어.

괄괄한 듯 편안하게 감정에 공감해주고

나와 고양이를 모두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각 내담자에 맞춘 상담을 해주려 애쓰셨지.

나는 애초에 고양이를 살피고 싶어서 상담을 진행한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고양이의 동의를 미리 얻었고

선생님은 상담 중간중간 필요하면 고양이의 이야기도 해주셨어.

어디까지나 다 내가 청했던 부분이야.


상담 도중 내가 하도 고양이 걱정을 늘어놓으니까

선생님이 무척 조심하며 말씀하셨어.

"우울증이 있는 건 맞아요. 다만, 모두 우울증에서 비롯된 건 아닐 수도 있어요. 우울을 토로하며 괴로워하는 순간마다 (집사)님이 달려와 살펴주고 위해주었다고 하셨죠? 그럼 저 같아도 그렇게 굴 것 같아요. 편하잖아요, 알아서 다 잘해주는데. 굳이 어렵게 소통할 필요 없죠.  인간이니까, 저도 모르게 그랬던 면이 있는 걸로 보여요."


우울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야.

고양이의 울음은 사실 다소 이기적인 측면도 들어있었다는 거야.

우울이란 감정을 방패 삼아 뒤에 숨었을 때도 있었을 거래.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집사가 힘들어하는 순간에는

고양이가 나서서 집사를 살펴줄 수도 있었던 거라고.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 기분이었지.


격주로 진행한 검사라 고양이의 검사 일주일 후였어.

다시 일주일이 지나야 우리는 정식적인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지.

때문에 웬만하면 고양이에게 방금 이야기를 티 내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대.

알았다고 했어. 내 생각에도 그게 맞았고.


얼레벌레집으로 돌아왔어.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면서.

그런데 그 일주일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정말 지옥처럼 힘들었어.

매일 울었어.

먼저 잠든 고양이 등을 쓰다듬으면서 하염없이 울었어.

서럽고 원망스럽고 내가 가엾어서 주체할 수가 없더라.

미운데, 아프다니까, 근데 아픈 게 내가 상상한 만큼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이렇게 마음 쓰는 내가 바보 같고, 그래서 또 가슴이 미어지고...


그렇게 일주일간 자기 연민으로 난 것 같아.

고양이보다 실은 집사가 더 불쌍한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


그리고 대망의 결과 날이 되었지.

함께 상담센터를 방문했고

이번에도 고양이 퍼스트, 집사 세컨드.

각 한 시간씩 결과를 듣고 추가 질문 등을 할 시간이 주어졌어.

고양이는 담담하게 결과를 듣고 나왔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됐지.


전문용어가 가득한 어려운 결과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어.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경청했지.

일주일 내내 너무 가련했던 내 신세가 정말 어떤지 알고 싶었어.

"(집사)님이 바라는 관계의 점수는 백분위로 76점 정도 돼요. 그런데 실제로 느끼는 관계의 만족감은 보세요, 12점밖에 안 되네요."

많이 외롭고 고달팠을 거라고 위로해주시더라.

참 딱한 점수였지. 100점 만점에 12점이 뭐야.


그러면서 선생님은 고양이의 결과지를 꺼내셨어.

"(고양이)님의 결과를 보면, 60여 점의 간극이 이해가 돼요."

뭐지? 역시 고양이 때문인가?

일주일간 켜켜이 쌓인 원망의 마음으로 결과지를 봤지.

"(고양이)님이 바라는 관계 점수 0, 실제로 느끼는 유대감 0.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바라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거예요. 당연히 줄 수도 없었을 거고요. 그래서 (집사)님이 참 힘드셨겠어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

그래도 나의 고양이는 무던히 애썼다는 걸 내가 알거든.

하염없이 집사를 부르고, 집사 곁에 있고, 집사를 웃게 해 주려 애썼단 말이야.

유대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바랄 줄도 모른다니.

그리고 그런 가여운 고양이를 내가 그토록 원망했다니.


내 결과지보다 고양이의 결과지를 더 열심히 본 것 같아.

자기 연민에 빠진 내가 문득문득

뭐야, 나는 이렇게 무서운 생각도 하는데

녀석은 팔자 좋게 울기만 하는 거 아냐? 했던 모든 이야기가

내 결과지엔 없고, 고양이의 결과지엔 선명하더라.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했어.


상담센터에 나와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어.

정처 없이 걸으며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지.

고양이는 내게 말했어.

"집사야 미안해! 앞으론 뭐든지 다 이야기해! 나도 할게!"

그렇게 아프면서, 제 잘못부터 사과하는 고양이를 어쩌면 좋은지.

우리는 소통을 다짐했어.

그리고 서로를 뜨겁게 안아주었어.

미안해, 사랑해,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하면서.


마음을 함께 길러나가기로 약속했어.

경중의 차이가 있긴 해도 근원적으론 같은 이야기야.

우리는 오늘도 사랑으로 보듬으며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중이야.


너는 어때?

행복하니?

부디 그러길 바라.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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