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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율로 Jul 05. 2022

바퀴벌레가 불쌍해

-둘째의 바밍아웃

"아아악! 엄마, 바퀴벌레 이만한 게, 내 방에.

잡아줘. 흐어엉! 빨리!"


자려고 방에 들어갔던 첫째가 

이층 계단을 쿵쾅쿵쾅 뛰어내려오며 소리친다.


휴, 남편도 잠들었는데

내가 잡아야 하는구나.


나도 무서워하는 바퀴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용기를 내 앞장선다.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오니

바퀴벌레를 종종 보게 된다.


비록 구옥을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집이라 해도 

바퀴벌레의 방문(?)을 막을 수는 없다. 




"엄마, 내가 잡아줄게!"


잠들지 않은 둘째가 개선장군처럼 나타났다.


평소 같으면 늦게 잔다고 혼을 낼 텐데

오늘은 둘째의 늦은 잠이 너무 반갑다.


"형, 형 5학년 사회책 써도 되지?"


"안돼! 네 책으로 잡아!"


둘째는 자기 방에서 즐겨보던 책을 가져왔고

나는 바퀴용 살충제를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엄마가 약을 뿌릴 테니까 네가 책으로 내리쳐. 알겠지?"


그러나 커다랗고 새까만, 반질반질한

바퀴의 몸을 보자마자 위축이 되어 둘째에게 속삭였다.


"은수야, 엄마 바퀴 정말 무서워하는 거 알지?

어떻게 잡지? 너무 크다."


"내가 잡을게 엄마. 약도 나 줘."


둘째는 옷걸이에 붙은 커다란 바퀴를 방바닥으로 떨어뜨리더니

약을 치이익 뿌렸다. 마구마구 도망가는 바퀴에게

재빠르게 약을 한번 더 분사하니 바퀴의 몸부림이 곧 둔해졌다.


비닐장갑을 가지러 내려가려는데

둘째가 휴지를 둘둘 말아 바퀴를 집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내 아들이지만 이렇게 용감할 수가!


첫째는 방에서 약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바퀴 트라우마 생길 거 같다,

하나님은 왜 모기나 바퀴를 만드셨을까

저 징그러운, 쓸데없는 것들을.

하며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한다.


난 아들 방을 걸레질해주고 나오며

둘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마음껏 칭찬해주었다.


늘 집에서나 밖에서나

벌레가 나타나면 우리 둘째가 잡아주었다.


"넌 정말 용맹해. 우리 집 용사 같아!"


정말 내 마음이 그랬다.


"은수야, 어떻게 바퀴벌레를 그렇게 잘 잡아?

엄마는 너무 무서워."


"엄마, 있잖아. 바퀴벌레가 우리 집에 들어오면 

늘 잡아서 죽이잖아. 불쌍해.

특히 형 방에 들어가면.

밖에서 만나면 살려주고 싶어."


바퀴 벌레 잘 잡는 법, 혹은 

무서워하지 않고 바퀴 잡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들에게서 더 큰 것을 배운다.


존재의 소중함.

생명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


내게 무가치하고 존재의 이유가 없던 바퀴벌레가

둘째와의 대화 이후

생명과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해 준

고마운 벌레가 되었다. 


바퀴벌레를 밖에서 만나면 나도 살려줄까?


네이버 지식 사전에서

'바퀴벌레'를 검색하며

집에서는 잡지만

밖에서는 살려줄지 고민 중이다.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

라는 속담처럼

바퀴벌레를 대하는 다섯 아이의 반응도

모두 제각각이다.


첫째는 무척 무서워하고 혐오한다. 

다리 여러 개 달린 곤충을 대부분 엄청 무서워한다.

둘째는 용감하게 잡아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셋째는 관찰하게 지퍼백에 넣어 달라고 한다;;

넷째는 바퀴벌레가 있는 위치와 생김새, 크기를 자세히 설명하며

잡아달라고 착하고 침착하게 요청한다.

다섯째는 "벌예? 무셔어." 하며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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