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들의 소꿉놀이

by 깨진돌

'저건 이번 시즌 신상인데, 언제 샀지?'


'돈으로 처발랐네. 난 몸매가 명품이라 그런 거 없어도 되거든.'


'쟨 여전히 싼 티 나네. 딱하다, 딱해'


모래 위 색색깔의 플라스틱 소꿉들은 이제 자리를 옮겨 재탄생했다. 수진이의 분홍색 냄비는 금장 로고의 블랙 가죽 핸드백이 되었고, 은정이의 노란색 국자는 백금 귀걸이가 되어 매달려 있었다. 턱을 괴고 있는 미경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저 광물은 하늘색 포크였을 것이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그녀들은 보고 싶지 않은 날도 마주치며 십 대를 함께 했다. 비슷한 헤어 스타일에 채도를 무시한 블랙 앤 화이트 조합의 옷들은 십 대 소녀들을 상대평가 불가능 상태로 만들었다. 구리지만 않으면 패스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대학으로, 회사로 무대를 옮긴 그녀들이 성인식을 치르기가 무섭게 시험은 다시 시작되었다. SNS라는 그녀들의 일상 포트폴리오가 살벌한 상대 평가의 잣대였다. '좋아요'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염탐만 하던 그녀들을 불러낸 건 역시나 너그러운 선화씨였다.


"우리 얼마만이야. 거의 십 년만 아니야?"


특별한 놀잇감 없이 나온 선화의 얼굴을 밝혀 주는 건 하얀색 블라우스뿐이었다. 연습했던 미소를 자연스레 장착한 선화는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추임새를 곁들이며 근황을 물었다.


아빠만 하던 수진이는 (눈을 키우고 코를 높인 후) 인기가 많아져 남자친구를 철마다 바꾼다고 자랑을 하였다. 수진의 남자친구가 사준 가방을 계속 곁눈질로 흘겨보던 은정이는 반쯤 내어 놓은 가슴을 내밀며 먹어도 살이 안 찐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의 넋두리를 온화하게 듣고 있던 선화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선화야, 너는?"


여유롭고 나긋한 목소리의 미경은 수진이나 은정이가 하는 넋두리 따위를 하지 않았다. 로고 하나 없는 가죽 가방과 특색 없는 디자인의 원피스는 오히려 미경을 특별해 보이게 했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는 미경의 태도는 오히려 친구들을 주눅들게 했다. 미경은 선화가 늘 우월했다는 사실도 잊은 듯 했다.


그래서 더 거슬렸다.


궁금하지 않은 그녀들의 이야기마다 따라붙는 '너는'은 검소하고 온화한 선화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한결같은 그녀에게 없는 특별한 근황을 묻는 질문 따위에 공들여 대답할 필요는 없으니까.


우월한 선화는 저급한 그녀들을 참아주기로 했다.


'그만 물어봐, 이년들아. 특히 이미경,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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