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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Feb 02. 2023

내가 부를 수 없었던 이름

신명나는 조각판을 벌이자

     -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상

     - <피에타> 미켈란젤로. 로마 시스티나성당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공사 중

묵은 돌에서 배어나는 깊고도 붉은 빛 

천년 넘게 낡고 익어 부드럽고 말랑하다 

파이프오르간은 천사의 날개처럼 펼쳐 있다

초 하나 밝히고 돌아서다 피에타상과 마주친다    

 

초록 잎새 사이로 늘어진 예수의 손등, 못자국

낙인과 트라우마, 아물지 못한 옆구리가 보인다*

바래고 지워진 색깔, 낡아 떨어지고 때 묻은 표면 

탄식을 머금은 성모의 입술 그늘진 눈썹 

바짝 몸을 기울여 예수의 발등을 본다 

불쑥 나간 내 손이 그 손등을 만진다 

상처 구멍에 손가락이 들어간다 

떨면서 예수의 옆구리를 더듬는다      

얼마나 아팠을까... 


내 손이 행하고 내 손이 말한다 

못 박히고 창 찔릴 때 얼마나 아팠을까 

갈비뼈를 열어젖히는 바람이 왈칵 

뻑뻑한 통각을 싣고 느닷없이 밀려든다 

통증이 흩어지나 싶더니 진공 상태가 되는 몸 

숨이 멎었구나 하는 찰나 뜨겁게 솟는 눈물

불덩어리가 빠진다 숨을 토한다 


뚫린 옆구리, 손등과 발등을 낱낱 다시 만진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명명되지 못한 몸의 모든 표면마다 아우성이다 

예수여

엄마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이 나왔다 호명했다 

평생 내가 부를 수 없었던 이름     


이상하다 18년 전 시스티나 성당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오직 아름답기만 했는데 예수는 분명히 죽었는데 마리아의 표정은 너무나 초월적이어서 표정이랄 것도 없었는데... 그건 걸작을 감상하려는 자의 공식적 경건이자 제스처였던가 의미가 사라진 메마른 말의 가지에 걸려 자빠졌던가 용액 속에서 녹지 않고 남은 나뭇잎의 엽맥처럼 의미로서의 모든 슬픔이 제거된 상징을 보았던 거로구나 슬픔이란 말이 죽고 남은 돌-뼈  

   

꽃잎 같은 살이 뼈에 돋고 피가 돌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구나 상징을 모르는 어린아이는 감각해야 했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힘이라는 '존재론적 추문', 어마어마한 사건의 지나친 고통이 둔하도록 하염없이 반복된 다음에야 어리석은 몸통에 틈 하나 가능했구나 ‘고통받는 신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지젝의 말이 깃발처럼 의미를 일으킨다 눈물도 쉬지 않는다 손등은 이미 쓸모가 없어 옷자락이며 소매로 눈·콧물을 닦고 훔친다   

  

괜찮다 뭘 해도 괜찮다 

엄마의 집이고 아버지의 집이다 

‘척’하지 말고 ‘체’하지 마라 

위장하고 변장하지 마라 

그동안은 필요해서 했고 필요한 만큼 잘했다 

그대로 있어 보아라 

있고 싶은 대로 있어라 괜찮다     


그럴게요 아버지 

얼룩덜룩 얼굴로도 충분히 예쁜 걸요 

아버지, 우리 경이 예쁘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막내 딸래미 참 잘 살았다고 말해 주세요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을 기회가 없었던 자식입니다 

병석에 누운 당신을 돌보며 새끼들 먹이느라 

수고하여 지친 엄마는 내가 울어도

얼른 달려와 안아주지 못했을 거예요


나 역시 내 딸들이 제 갈 길 가리라 믿고 

벅차게 지켜는 보았으나 자주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사랑받는 기쁨을 몸으로 직접 전하지 못했답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도우면 

다른 누군가 내 아이에게 그리 할 거라 믿었으니 

그렇게 남의 새끼들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내 새끼를 사랑했답니다 그러나

눈을 보며 말해주지는 못했어요...    


사랑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훌륭하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는 조각상이 엔터키 하나를 날렸다

벙어리·귀머거리 존재의 한복판을 뚫고 

불가능한 말을 가능케 했다 불쑥

분명히 보았으나 가뭇없는 a      


수십 년 회화·색채의 사랑이 아른아른

형상으로 나를 흔들고 깨뜨려 한 줄기

틈을 내고 빛을 불러 내 호흡을 찾게 했다 

색채色彩는 색체色體였다 

나는 그 이물질의 몸을 먹는다 

사랑을 먹는다      


어이없고 싱겁다, 사랑

상징계의 철통 이데올로기 사랑,에 닿다니!

의미를 잃고 떠돈지 오래인 그 말은 이제 

몸맘으로 발견한 나만의 진리가 되었다

나만의 무늬로 나를 위해 내가 짠 옷

사랑을 입고 무조건

엄마와 아버지를 용서할 때가 되었다 

예술작품은 하나의 용서이며 용서는 미적이라 했으니**     


어떤 나로 살았으며 어떤 나이고자 하는지 

평생 우주를 향해 간절히 외쳤음을 알겠다

나무-흙-돌덩이-강철-콘크리트 나에게

필요한 재료들이 도착했다, 사랑과 용서

뚝딱뚝딱 신명나는 조각판을 벌이자 

사랑을 사용하자 사랑을 연습하자

간지럽게 피어나는 기쁨, 홀로 있어 온전함 

심장은 태양을 품고 힘차게 등뼈를 세운다 

진정한 자기조각 

도와줘요 까미유~~ 


                                                                                                                                          

*낙인: stigma 그리스도의 다섯 군데 상처

트라우마: trauma 큰 상처, 원래는 치유불가능의 상처

**잊혀지지 않았지만 용서를 통하여 의미를 지니게 된 죄, 글로 씌어진 흉악함, 이것들은 아름다움의 조건이다. 치욕을 기억하고 그것을 사랑의 담론의 불안정한, 음악화된, 또다시 관능화된 기호들을 통해서 여과시키는 용서 이외의 아름다움이란 없다. 용서는 미적美的이다. 승화에 필요불가결한 용서가 문제이다. 용서하는 자(예술가)의 고통스런 육체는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줄리아 크리스테바 『검은 태양:우울증과 멜랑콜리』 김인환역. 동문선. 261-263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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