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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수박 Jun 26. 2024

흔들리는 오십을 산다.

1. 공개 글쓰기.

"글을 쓴다는 것은 송두리째 준다는 것을 뜻한다. 주기를 망설이며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훌륭한 작가는 모든 것을 내주는 작가이다.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노출하는데, 우리는 그 위험을 감당해야만 한다."

                                                                                   -아나이스 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오십이란 문턱을 넘어서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한다.


오십에 들어서고 니, 부모님은 내 곁에 안 계시고 내 목숨 같던 아이들은 옆집 처녀, 총각처럼 데면데면해진다.

그 세계가 다 일 것 같던 아파트 엄마들과의 교류도 이사를 오고 나니 재 정비가 된다.

밥벌이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던 쥐꼬리만 한 전문성도 경단녀와 재 취업을 반복하면서 결국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오십에 들어서면 온몸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 들리는 신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동안 공짜로 편히 살았으니 이제부턴, 돈을 지불하면서 고치고 달래 가며 살아야 하는 나이가 돼버린 거다.

'사십 대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 이런 생각을 했던 이십 대의 내가 오십 대가 되고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전에는 별 관심 없던 풀과 작은 꽃, 나무, 하늘이 좋아진다.

 가끔은 꽃과 풀들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기이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지나가는 갓난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사람들과의 만남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하다.

치열하게 살았는데도 여전히 경제적 자유는 꿈도 못 꾼다.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이다.


여자 나이 오십이면 거울 보는 재미가 아닌, 돈 쓰는 재미로 살아야 한다는 우스깨스런 말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돈 쓰는 재미라니ㅠ.ㅠ

두 아이 학원비와 대출금, 시부모님 생활비, 각종 세금과 병원비, 보험료 등으로 허우적대고 있다.

결혼을 늦게 해서 나는 아직도 중, 고생 학부모다. 육아 졸업을 한 또래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남편이 대기업을 다니거나, 사업가가 아닌 이상 외벌이로는 생활이 어렵다.

그 와중에 부부 중 한쪽 건강이 무너진 경우는 더 큰 어려움 직면하게 된다.


주변에 엄마들은 40대 초반부터 맞벌이를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도서관 사서, 간호조무사 등등...

나도 나름 바리스타, 독서지도사 자격증도 땄지만 무용지물 된 지 오래다.

오십넘은 초보 바리스타를 써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시니어로 넘어가야 하나? 참 애매한 나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더 큰 문제는 나의 무릎이다.

49세에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연골이 다 닳아서 100세 할머니 무릎'이라고 했다.


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두 아이 열심히 씻기고 재우고 먹이고 무릎에 앉혀서 책 읽어주고...

좌식생활을 많이 한 탓일까? 아이들과 등산도 즐겼었는데 그게 다 원인일까?

암튼, 지난날 열심히 산 훈장 대신 관절염만 떡하니 주어졌으니. 내가 우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7년 전쯤 시작된 공황장애와 평생을 같이 해온 편두통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젊은 시절 안경 없이 살아온 내게 노안은 남들보다 더 빨리 시작됐다.

 병원에서는 눈 좋은 사람이 남들보다 노안이 일찍 오는 게 공평한 거란다. 이게 무슨 논리던가!

또래보다 더 빨리, 강력하게 시작된 노안 역시 나의 우울감을 불러일으켰는데 크게 한 몫했다.


오십을 넘어서니 몸에선 소멸될 것을 암시하는 신호들이 자꾸만 생긴다.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는건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그 자연의 이치를 나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반짝이지 않으며 무릎 때문에 경제적인 활동에도 제약이 있다.

작년부터 용기를 내어 취업을 알아봤다. 무릎도 부실하고 노안도 왔지만, 앉아서 할수 있는 사무직에 도전을 했다. 하지만, 단 한 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 사무직 취업은 힘들구나. 나라도 같은 조건이면 젊은 사람을 쓸 것 같다.


결국, 살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게 되었다.

요즘 유튜브나 온라인에서 떠드는 한 달에 1000만 원 버는 방법 등 등.

 이건 뭐지? 솔깃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온라인상에서 나 같은 50대 주부도 돈을 벌었다는 후기와 강의가 쏟아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겠다 싶어 열심히 알아봤다.


'그래.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스마트 스토어를 위탁으로 해볼까?' 그런데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중국 쇼핑앱들의 경쟁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다 똑같은 도매몰에서 가져다가 소매몰에 올리면 결국 치킨게임 아닌가?

냉정하게 말해서 그 사람들이 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이유가 없다.


그래서 SNS를 해야 한단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고객을 유입해야 한단다.

이게 비결이라고 혹자는 무한 반복 강조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블로그다. 나의 블로그는 그렇게 시작됐다.


 혼자 보는 일기만 40년  써왔지. 공개 글쓰기는 전무한 내가 블로그 라니..

적청이 그랬다. 당장 내 삶이 변화되길 바란다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시작하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1. 유튜브 영상 올리기  2. 책 읽기  3. 블로그에 글쓰기

기특한 청년이다. 오십먹은 아줌마의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게 했으니...


그런데 또 고민이 시작됐다.

뭘 써야 하나? 나의 일상을 누가 궁금해할 것이며, 어느 분야든 전문성은 제로인데...

그런데, 작년 10월에 기적 같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왜 기적 같은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풀겠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여행기록을 하자!

그렇게 공개 글쓰기는 시작됐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쓸려니 어렵다.

아주 오랫동안 세상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은둔형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블로그라니...

맞춤법, 문법, 띄어쓰기는 왜 이렇게 힘든지... 나 교육과정 제대로 밟은 사람 맞아?

글쓰기가 이렇게 힘들었다고?

블로그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처참한 글쓰기의 현 실력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한 개의 글을 작성하는데 이삼일 내지 일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여행 기록을 하면서 자료를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 블로그를 참조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방문자가 많은 블로그는 일기 같은 기록보단,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정보성 글과 후기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또한, 형식은 업계 1위를 참조하되 나만의 특색이 있어야 함을 알았다.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장이다.


그러다 어느 블로그 인플루언서가 에드포스트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실로 충격이었다.

 방문자가 엄청난 인플루언서인데 한 달 수익이 50만 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블로그로 수익화를 이룬다는 건 언감생심 불가능의 영역이구나.

블로그와 스마트스토어 어떻게 연계지도 모르겠고...

그 이후로 생각을 바꿨다.


수익화는 접어두고, 멋 훗날 아이들이 엄마가 쓴 여행 기록을 볼 수 있게 하자!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접속해서 글을 볼 수 있으니 나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쓰다 보니 알게 됐다. 나 혼자 토해내듯 써 내려갔던 일기들과 공개글쓰기의 차이점을..

공개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잘못된 어미, 조사의 쓰임들도 하나둘씩 고치게 되었다.

 문장을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용기 내서 뚜벅뚜벅 걸어가려 한다.


어쨌거나 글쓰기는 복잡하고 답 없는 내 머리를 잠시라도 쉬게 해주는 유일한 출구였다.

또한, 서두에서 적었듯 글쓰기야말로 나를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수단임을 깨달았다.

이 정도까지 솔직하다고?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놀랄 때가 있다.

나는 그 정도로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자신이 있는가?


결국, 블로그든 유튜브든 온라인 시장의 핵심은 나만 콘텐츠인 것 같다.

이건 긴~ 숙제다. 아직 풀지 못하는...

어느덧 블로그 5개월 동안 27개가 포스팅 됐다. 점점 속도가 붙고 익숙해진다.

하지만, 1일 1포는 아직 힘들다.

10개 정도 더 쓰면 소재는 고갈될 것 같다. 그땐 다른 콘텐츠를 찾아야겠지.


어느 유명인이 여행을 다니면서 책을 내는 걸 부러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도 여행을 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다. 단지 돈을 벌지 못할 뿐.^^

이 또한 기록하다 보면 나중에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아님 말고다.


오십이 되기 전에 각종 오십 입문서와 자기 계발서, 에세이를 죄다 읽 적이 있다.

그 책들에 공통점은 오십의 증상들을 서두에 나열하여 공감을 이끌어 낸 후, 결론은 자기 계발을 하라는 거였다.

저자들은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요리, 꽃꽃이등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걸로 끝난다.

뭔가 명쾌한 답지를 기대했던 나는 실망하면서 '그렇지 뭐... 책 읽고 글 쓰라는 거네' 하 빈정거린 적이 있다. '너무 진부한 거 아니야'. 그런데 이것 외에 또 어떤 대안이 있을 싶다.


답안은 두 개 중에 하나일 거다.


첫째. 비록, 늙어가고 있지만 우울해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 공부를 하면서 자기 계발을 한다.


둘째, 욕심부리지 말고 지금에 만족한다.


인생 별거 없다. 애니메이션 soul의 대사 중 "내 불꽃은 하늘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라는 말이 나온다.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게 삶의 목표라고 생각한 어른 들을 한방 먹이는 대사다.


자, 우리는 둘 중 선택해야 한다. 하늘보기와 걷기를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안분지족의 삶을 살지..

 아님,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자기 계발과 공부를 하면서 살지 말이다.

물론 두 개를 다 선택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다.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끝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것!


여하튼, 나는 꿈틀대는 쪽을 택했다.

나무와 하늘 풀들은 그동안 많이 봤다.^^

 블로그를 시작하니까 좋은 점은 아무리 허접한 글일지라도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거고,

그 누군가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정성스럽게 글을 쓰고 공부한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도움이 된다.


세상으로 나오려면 최소한 발가락이라도 꿈틀거리라 했다.

나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세상 내 존재를 드러낸다,


오십이 넘으면 거창한 성공 따윈 기대하지 않는다.

뭐든 그냥 할 뿐이다. 뭔가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작은 꿈틀거림이 나비효과가 되어 육십이 된 나에게 소소한 행복을 전해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그냥 오늘도 무탈함에 감사하며 난 블로그를 쓴다.



"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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