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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수박 Jun 28. 2024

흔들리는 오십을 산다.

2. 운동신경? 미안하다 아들아!

오늘도 유튜브에선 모 대학병원 노년내과 의사가 온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재테크보다 근테크가 중요합니다. 노년에 본인 힘으로 걸어 다닐지 요양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지는 근력운동 여부에 있습니다! 특히 중년부터는 반드시 근력 운동을 해야 합니다."


듣기만 해도 우울한 소리다. 요양병원에서 누워 지낼지 본인 다리로 걸어 다닐지가 지금의 근력운동으로 결정된다는데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인바디검사를 해보니 간신히 70점으로 과체중이니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량을 늘리라고 나온다.

중년 이후 안착한 뱃살은 자리를 잡은 듯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이미 퇴행성 관절염이 와 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진통제 한통운동처방만 내리셨다.

수술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 진통제 먹으면서 버티라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아쿠아로빅을 시작하고 체중은 최대한 뺄 수 있는 만큼 빼라고 하셨다.

조금이라도 무릎에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나는 대퇴사두근이라고 불리는 허벅지 근육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공부해 보니, 실제 관절염이 상당 부분 진행한 사람도 다리 근육을 키워 수술 없이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도 더 간절하고 절실한 맘으로 헬스장을 다니고 있다.

근데 정말로 맘만 간절한 게 문제다. 선천적으로 운동자체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이 걷기와 자전거 타기라서 헬스장에 가면 러닝머신부터 시작한다.

유산소로 5분 몸을 풀어주고 근력운동 30분가량 기웃거리다가 다시 걷기와 자전거를 병행하면서 30분을 채우면 끝이다. 총 1시간에서 1시간 30분씩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볍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근력운동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된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들었다 내렸다 밀었다 당겼다 하는 건 정말 끔찍하다 못해 고통스럽다.

팔 운동 한 세트를 하고 잠시 쉬는데 불현듯 유년기 시절이 떠올랐다.


난, 어릴 적부터 운동을 못했다.

비교적 착실했던 성적표도 유일하게 낙제가 체육이었다.

 비를 좋아했던 이유가 체육시간에 자습할 수 있어서였으니...

요즘아이들은 비 오면 강당에서 하던데 우리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체육은 내가 가장 싫어하면서 못하는 과목이라 늘 괴로웠다.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원히 체육과는 안녕할 줄 알았는데 이놈에 체육은 계속 따라왔다.


대학에서 체육대회를 하는데 우리 과에 여학생이 적어서 모두 출전해야 했다.

항간에는 내가 고등학교 때 배구선수였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었다.


그 당시엔 키 큰 여자들에겐 배구선수, 아니면 농구선수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아니, 나는 운동을 못한다고.. 배구는 무슨.. 공도 몇 번 만져 본 적 없다고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통하지가 않았다.


결국, 예선전은 시작됐고 우리 과 아이들은 일제히 내 이름을 연호하며 큰소리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아!... 내 인생 흑역사의 한 장면이다. 만천하에 나의 몸치를 드러내는 순간이었으니.

경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응원소리는 잦아들었고 응원하던 학생들 하나둘 자리를 떴다.

암튼, 그 이후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나에게 운동은 인생에서 늘 열등감이자 고통이었으니...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니 이번엔 사내 체육대회다.

신입사원이라 못한다고 뺄 수가 없어 모든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키 크고 운동 잘하게 생긴 나는 모든 경기를 참여하며 재를 뿌리고 다녔다.

도대체 이놈에 체육은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작정인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니 이번에는 가을 운동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달리기를 하고, 줄다리기, 각종 게임 등을 하는 식순이었다.

이 와중에도 달리기를 잘하는 엄마는 아이를 위해 불을 뿜으며 운동장을 달리더라.

몸치인 엄마는 여기까지만 고생하면 대충 일단락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더 이 부모가 운동회에 참여하는 행사는 없다.

이제야 비로소 인생에서 체육 영원히 이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끈질긴 체육은 다른 형태로  내 삶에  피어났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돈을 써가며 자발적으로 운동이란 걸 시작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에는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요가, 에어로빅, 헬스, 수영 어느 것 하나 다이어트의 효과를 보진 못했다.


에어로빅 선생님이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자기 체형은 에어로빅엔 최적인데... 박진영이 춤을 잘 추는 건 팔이 길어서예요. 춤이나 에어로빅이나 팔다리가 길어야 동작이 예쁜데 자기는 팔다리는 긴데... 아쉽다. 나랑 바꾸고 싶다."

칭찬인지 욕인지...


수영은 큰 용기를 내어 시작했는데 두통이 너무 심해져서 결국 실신까지 하는 바람에 바로 접었다.


그나마 요가가 제일 나하고 맞는 것 같아 요가로 직업을 바꿔볼까? 하는 야무진 생각도 했더랬다.

하지만, 인도에 가서 요가를 배워야 하고 물구나무서는 걸 보는 순간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러던 와중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젊었을 때 보디빌딩을 했던 헬스트레이너다.

운동을 못하는 나의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다!' 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남편의 20대

 여자들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에 몸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건장한 체격에 잔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더 선호할 뿐이지.

그런데 남편은 만날 당시 팔근육이 웬만한 사람 허벅지 사이즈였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 옆사람에게 민폐인 몸이었던 거다.


남편이 했던 말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이, '운동을 하다 보면 더 이상 못 들겠다 싶은 한계가 오는데

그때 하나 더 들어 올려야 비로소 몸이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음... '저런 마인드라면 인생의 힘든 난관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겠군.'

요런 야무진 착각을 하면서 결국 결혼을 다.

결혼하면 나도 몸짱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결혼 전보다 5킬로가 더 쪘다.


그 후, 아이들이 태어나고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때였다.

아들 있는 엄마들은 누구나 가입시키는 축구 클럽 대회가 열렸다.

모든 부모는 혹시나 우리 아이가 손흥민의 자질이 있을까? 탐색에 들어간다.

부모들은 빛 좋은 날 소풍이라도 온 듯 돗자리를 펴고 그늘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드디어, 우리 아들의 경기가 시작됐다.


 야무진 발동작을 보이며 어른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들은 좋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자구 겉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공이 아들 발 앞에 왔다.

아들은 결정적인 순간 헛스윙을 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주변에 탄식을 자아냈다.


 공은 이내 다른 아이들에게 넘어고 아들은 멀찌감치 서성이다 곧  따라다.

공을 차는 동작 하나하나와 패스를 보고 난 후.

우리 부부는 이 길이 아님을 빨리 깨달았다.


그래도 아들이 운동을 좋아하길 바라며 복싱, 야구, 수영, 태권도를 가르쳤다.

남자아이들 세계에선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운동 잘하는 아이가 더 인기가 많았다.

엄마를 닮아서 운동 유전자가... 아쉽고 많이 미안했다. 남편을 닮았어야 했는데...


시간이 흘러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중학교 2학년 때 배드민턴을 접하게 되었다.

방과 후 배드민턴반에 들어갔는데 드디어 자기가 잘하는 특기를 찾았다고 호들갑이다.

무심히 '음.. 그래? 그렇구나!' 흘러들었는데 이내 가을에 학교 대표로 시합을 나간단다.

 무슨 소리? 아들이 학교 대표라니? 알고 보니 하겠다는 아이들이 없어서 신청자를 받았단다.


암튼, 반신반의하면서 아들을 응원했다.

진짜 재능을 발견한 걸까?

국가대표 선수로 나가야 한다는 둥 허세를 부리는 아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드디어 가을에 대회가 열렸다.

우리 부부는 약간의 기대와 근심을 가지며 실내 경기장으로 향했다.

관중석에서 여러 경기를 관람하니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중학생이라 믿기 어려운 체격에 강력한 스매싱을 날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난, 그때  보았다. 중학생 아이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동물적 에너지를...

운동 유전자는 기른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라, 상당 부분 타고나는 거였다.

또한, 태고적부터  세고 강한 자 맹수로부터의 생존확률 높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환호하고 끌리는 게 아닐까? 강한 유전자를 선별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스포츠가 아니었을까?


기다림 끝에 아들의 경기 시작됐다.

아!...... 심각하다.

못해도 너무 못한다. 이 정도면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들의 실력도 형편없었지만 같은 팀 친구도 처참했다. 상대팀과 실력이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났다.


지고 있는 와중에 아들은 상대편 아이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고 배드민턴 채를 정신 사납게 흔드는 잔재주까지 보였다. 아!... 정말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우리 부부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아들 학교는 시에서 주체하는 배드민턴 대회에서 꼴찌를 했다.


우리의 허탈함보다 속상해할 아들의 맘이 더 걱정되고 신경 쓰여서  밝게 말했다.

"좋은 경험이었어. 인생에서 실패하고 지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 진짜 소중한 거야!

그리고 너희는 준비가 덜 돼 있더라. 더 연습해서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자!"


집에 오면서 남편에게 넋두리를 했다.

"아.. 내 유전자가 아니라 당신 유전자를 닮았어야 했는데... 하필 운동 못하는 내 유전자를 닮아서...."

그러자,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냐. 나도 운동은 못했어."

"뭐? 자기 운동 잘하잖아. 헬스 트레이너가 운동을 못한다고?"

"근육 만드는 것과 운동은 달라. 나도 운동은 못했어."


아!.... 이런. 이걸 지금 말해준다고? 16년이 지나서?

멍~한 기운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아들아!~ 미안하다.


배드민턴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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