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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수박 Jul 15. 2024

흔들리는 오십을 산다.

3. 심장이 크면 좋은 건가요?

22년 12월 마지막날 아침이었다.


남편은 자고 일어나더니 간밤에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잠을 못 잤단다.

" 음... 그거 공황장애일 거야. 요즘 50대 남자들에게 우울증 하고 공황장애가 그렇게 많대"

스트레스받는 게 있나 보다. 나는 걱정 말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평상시 너무나 건강했던 남편이기에 은근 신경 쓰였다. 마침 편두통약 받으러 내과 갈 일이 있어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같이 들어가지도 않고 진료받고 나오는 남편에게 물었다.

"뭐래? 이상 없다지?"

남편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심장이 크다던데? 오후에 심초음파를 해보재."


다음차례인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 선생님 방금 전에 엑스레이 찍은 남자가 제 남편인데요. 심장이 큰 건 뭔가요?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괜찮은 거죠?"

선생님은 당황해하시며, 너무 걱정 말라고 빨리 오기 정말 잘한 거라며 조상님들이 도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일단 초음파 검사부터 해보자며 확답을 피하셨다.


그날 오후부터 23년 3월까지였을 거다. 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지옥맛을 보게 된 게.

남편은 결국 심부전(확장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심장이 큰 건 안 좋은 거였다.

심장 근육이 이유 없이 커져서 박출률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였다.

몇 년 전부터 등산할 때 몹시 숨차했는데 나이 들고 살이 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정상인의 박출률(EF. Ejection fraction 심박출량)은 통상 55~70 사이이며, 이 EF 수치는 심장이 온몸에 얼마나 혈액을 잘 공급하는지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EF 수치가 45 이하일 때는 희귀 질환 난치성으로 산정특례 적용이 되며 5년 동안 병원비 지원을 받는다. 한마디로 완치가 어려운 병이니 나라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준다는 소리다.

남편이 진단받을 때 EF 수치가 24였다.ㅠ.ㅠ 언제 심정지로 쓰러져도 이상 없는 수치였다.

20 이하로 떨어져서 숨쉬기 힘들면 마지막엔 심장이식뿐이 없다고 했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공포의 기억들이다.

그래. 그렇게 폭풍우 치듯 내 삶에 커다란 바위가 쿵하고 떨어진 느낌이었다.

검색을 해볼수록 심장이 떨려왔고 숨이 막혀왔다.

심부전은 심장질환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생존 기간이 5년 정도라고 나와있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는 비단, 남편에 대한 걱정만이었을까?

아직 한창인 아이들을 혹여 아빠 없이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아니었을까?

결국 이 또한 남편보다 내 걱정이었구나를 알아챘다.


결혼생활 17년간 거의 아파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그에 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픈 곳이 많은 나는 남편에게 타박받기 일쑤였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몸이라도 건강해야 한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아프고 서러울 때마다 '두고 보자! 너 아플 때 나도 똑같이 해주마!'

요렇게 소심한 복수를 벼르고 있었는데 '아!... 이렇게 또 나를 좌절시키다니.'


일단, 이 병은 다행히도 삶의 질에는 크게 영향을 지 않는다.

약을 먹으면 큰 증상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대신 최악의 경우는 심장이식이니... 참 무서운 병이 아닐 수 없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며, 좋아질 확률은 그나마 신약 덕분에 30프로 확률이라고 했다.

약을 먹으면 30프로는 유지, 30프로는 악화 30프로는 개선이란다.

남편이 어느 30프로에 해당될지 걱정이 앞섰다.


매일 슬퍼하고 매일 걱정하고 매일 지옥 같은 공포의 일상에서 숨을 쉬는 게 힘들었다.

밤마다 잠도 못 자며 끙끙대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5년을 살지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 단, 그날이 올까 봐 하루하루 슬픔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남은 삶이 너무 안타깝고 억울할 것 같아. 설사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밝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야 남은 삶이 행복으로 가득 차지."


슬픔 속에서 매일밤 울다가 요런 정의를 내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식단관리를 도맡았다. 카페, 환우들 단톡방에 가입해서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ef 가 올라간 사람들 사례를 남편에게 이야기해 주며 희망을 주었다.


일단, 남편은 178에 96킬로그램의 비만이었다. 당장 체중감량에 들어갔다.

몸은 대형차인데 경차 엔진이 들어 있는 꼴이란다. 그래서 심부전 환자들은 가장 먼저 체중감량을 한다.

심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먹고살기 바빠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하여 남편의 근육은 지방으로 변해 있었다.

남편은 육 개월 동안 근 20킬로그램을 감량했다.

이대로만 운동하고 관리하면 보통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이란 놈이 살짝살짝 얼굴을 내 비췄다.


EF 수치도 24에서 33으로 올랐다. 그 순간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던지.... 로또당첨보다 더 행복했다.

매일밤 천수경을 하루도 빠짐없이 읽고 잤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식단과 기도뿐인 것 같았다.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신은 인간에게 약간의 희망을 허락한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남편이 아프고 나서부터 아침저녁으로 감사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부처님인지... 신인지... 우주인지 알 수 없지만, 무조건 감사하다.

이렇게 눈을 떠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장난치고 타박하고 투덜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성찬은 아니어도 아이들과 같이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던 와중 남편의 누나가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처음 듣는 돌로미티를 검색해 보고 확~ 빠져들었다.

마침, 큰아이가 중3이라 내년부터 작은아이 고3까지 근 6년간 여행은 없을 것 같았다.


남편과 큰 아들이 여행을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영세한 자영업자인 남편의 수입으로 겨우 버티는 와중이어서 이건 미친 소리 나 다름없었다.

어림없는 소리라고 반대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한 푼이라도 저축해야 하는데 여행이라니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2년 전 심정지로 돌아가신 친정아빠를 보고 남편의 병을 겪으면서 나의 세계관은 조금씩 변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을 수 있다. 가족은 혈연이 아닌 같이 보낸 시간으로 형성되는 것 같다.

나는 오늘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내 무릎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남편이 건강할 때..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아직 살아 있기에 우리는 다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나중은 없기에 나는 빚을 내서라도 이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남편의 심장병이 결국 이탈리아 여행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담당선생님에게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물었고, 의사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 답이 떨어지자마자 항공권을 예매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지금이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축하드린다.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


(여행 이야기는 다음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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