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라는 안락함이 두려워진 어느 직장인
현재 나는 사업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이 업무는 정책의 최전선에서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내가 관리하는 사업들이 전국 단위로 적용되어 널리 활용될 때면 분명 큰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의 업무가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첫발은 연구소에서 뗐다. 학사급 연구원으로서 석·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회의를 할수록 모르는 용어와 생소한 상황들이 쌓여갔다. 이것이 회의인지 강의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내 의견을 내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논문 찾는 법과 읽는 법을 익히고, 계획서를 통째로 외울 정도로 노력했다. 출근하자마자 신문 읽듯 논문을 읽다 보니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회의석상의 단어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연구원으로 성장해 갔다.
연구는 상상하던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이를 문서화하고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탄탄한 논리를 세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고난이었지만 말이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기획하며 학술대회 발표까지 마쳤을 때, 나는 그 과정이 힘들기보다 즐겁다고 느꼈다. 거대한 연구 프로세스 속에서 내가 하나의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감각, 내 논문이 세상에 나와 무언가 기여했다는 성취감이 컸다. 고생스러운 순간도 성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대학원 진학도 결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직의 현실은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3년 넘게 근무하며 점차 연구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결과가 보장된 안전한 연구에만 치중하는 분위기가 아쉬웠다. 아무리 새로운 기획을 해도 조직의 시스템 안에서는 결국 루틴한 업무의 반복이 되곤 했다. 누군가는 고작 3년 하고 매너리즘에 빠졌느냐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쉽게 싫증을 느끼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이직을 고민했다.
때마침 국가적으로 '혁신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바람이 불었다. 실패 가능성이 높더라도 가치 있는 연구를 지원한다는 취지에 이끌려 연구사업단에 합류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내 역할은 연구보다는 이를 지원하는 행정 업무에 치우쳐 있었다. 직함은 연구원이었지만 실상은 행정가였다.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도전적 연구를 돕는다는 자부심을 가지려 노력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조직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를 지원한다면서도, 정작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계산하는 데 급급했다. 기발한 연구를 가져오는 팀들을 볼 때마다 직접 연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증만 커졌다. 그렇게 나는 연구에서 멀어지고 연구 행정에 더 가까워졌다.
고용 형태도 여전한 숙제였다. 국가 사업은 예산과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늘 미래가 불투명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더 이상 계약직으로 전전하고 싶지 않았다. 계약직이 유연한 경력 관리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문 행정 역량이 부족했던 내게 현실은 그저 '불안정한 직장'일 뿐이었다. 결국 열정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며 정규직 이직을 준비했다.
운 좋게 공공기관 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같은 행정직군이지만 연구 행정이 아닌 사업관리라는 새로운 업무였다. 사업이 전국에 적용될 때의 막중한 책임감은 큰 원동력이 되었다. 연구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쫓는 일이라면, 사업관리는 눈앞의 현안을 해결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확인하는 매력이 있었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다시 신입의 마음으로 현장을 누비며 배우고 적용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고 성취감도 느꼈다. 그렇게 연구는 기억 너머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행정 업무의 연차가 쌓일수록 근본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나만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는 무엇인가?' 연구자에게는 주제가 곧 전문성이 되지만, 행정은 자칫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조직 안에서 안정적일지는 몰라도, 개인으로서 성장하지 못하면 내 가치가 고작 직장에서의 직무로 한정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불안은 나를 다시 박사 과정 고민으로 이끌었다. 무언가 뜨겁게 공부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돌파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뉴타입의 시대'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사람이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AI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대에 인간은 현상을 살피고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한 직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이동하는 것이 '뉴타입'의 방식이라는 점도 위로가 되었다. 정규직이라는 안락함을 포기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현실에 안주하기 싫어 발버둥 치는 내 모습도 결국 성장을 위한 과정일 것이다.
비록 최근의 이직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지금은 마음을 다잡으며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고민은 여전하다.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불안을 동력 삼아 내일의 나를 다시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