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가 싸지면, 우리는 더 아파질까

보험이 책임을 대신해줄 때

by 빛나는복도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느슨해진다.

번호표를 쥐고 있으면, 몸의 통증보다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병원비는 많이 안 나오겠지.’


우리는 누구나 아프다. 그리고 아플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망설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건강보험은 참 고마운 제도다. 감기 한 번에도, 검사 하나에도, 우리는 국가라는 큰 지갑에 기대어 숨을 돌린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은 아픔 앞에서 더 오래 버텼을 것이다. 아프다는 사실보다, 돈이 먼저 두려워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고마움은 혹시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너무 당연해져서,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보험이라는 단어에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다. 도덕적 해이다.
이 개념은 보험이 처음 자리 잡던 시절부터 등장했다.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불을 더 조심하기는커녕, 오히려 화재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보험금을 노리고 집을 태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집을 지키기 위해 만든 장치가, 집을 태워도 괜찮다는 면허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보험이 있다. 태어나는 순간 자동으로 가입되는 보험, 국민건강보험이다. 선택도, 서명도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보호받는 존재가 된다. 이 제도 덕분에 병원 문턱은 낮아졌고, 의료 접근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문턱이 낮아진 자리에는 언제나 다른 문제가 함께 놓인다.


병원비가 싸니 “일단 와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다.
약값이 거의 들지 않으니 필요 없는 약봉지를 들고 나온다.
이 병원에서 안 되면 저 병원으로, 진료 기록은 복사되고 처방은 겹친다.
누군가는 안심을 얻고 돌아오지만, 그 비용은 조용히 누적된다.


건강보험에서 돈을 내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결국 같은 집단이다.
그러나 그 집단은 너무 크고, 너무 넓다.
그래서 책임은 흐려지고, 부담은 분산된다.
누군가의 ‘조금쯤 괜찮겠지’는 다른 누군가의 보험료 고지서에 숫자로 찍힌다.


일부 학자들은 말한다. 도덕적 해이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다수가 함께 부담하는 구조에서는 누구든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고. 어쩌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보험제도는 인간을 선의로만 가정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는 늘 인간의 나약함까지 계산해야 한다.


화재보험에서 중요한 것은 불이 난 뒤의 보상이 아니라, 불이 나지 않도록 했는가다. 소화기를 비치했는지, 전선을 점검했는지, 예방의 흔적을 묻는다. 건강보험도 다르지 않다. 병원에 다녀왔는지가 아니라,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예방 없는 보험은 결국 스스로를 좀먹는다.
치료만을 보장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조용히 금이 가고, 어느 순간 한꺼번에 무너진다.


보험은 모든 위험을 대신 짊어져 주는 장치가 아니다.
보험은 책임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를 설계하는 장치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고마웠던 제도는 가장 무거운 부담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이미 그 경계선 근처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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