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편식 예찬

편식 좀 하면 어때서요, 독서인데

by 빛나는복도

필자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매번은 아니지만, 흔들리는 객차 안에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지루한 이동 시간이 잠시 다른 세계로 바뀐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활자를 읽는 그 시간만큼은, 하루가 조금 덜 소모되는 기분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읽을 책이 떨어졌다. 그래서 습관처럼 자주 들르던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미리 적어둔 목록이 있었다. 유튜브와 인터넷에서 ‘많이 읽혔다’, ‘인생 책이다’라는 말을 들은 제목들이었다. 사람들의 추천을 믿고 책을 훑었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문제는 책이 아니라, 나였다.
추천받은 책들은 분명 좋은 책이었다. 다만 나의 호기심을 건드리지는 못했다. 몇몇 책은 구매까지 했고, 몇몇은 목차를 읽다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었다. 흔히 말하는 ‘필독서’라 불리는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도는 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목차에서부터 더는 궁금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책을 고를 때 목차를 가장 먼저 본다.
소설이라면 뒷표지의 몇 문장을, 비문학이라면 차례를 찬찬히 읽는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미리 보여주는 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그 지도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 같지 않으면 발걸음을 떼지 않는다.


예컨대 <사피엔스>나 <총, 균, 쇠> 같은 책들이다.
굵직한 이름, 묵직한 평가, 수많은 추천. 한때는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마련해두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읽지 않았다. 관심이 생기지 않는 책은, 아무리 옆에 있어도 펼쳐지지 않는다. 책은 의지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독서를 두고 사람들은 ‘편식’이라 부른다.
읽고 싶은 것만 읽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식견이 얕아진다고 말한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장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이 세상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란 과연 존재할까.
2023년 기준, 세상에는 약 1억 5천만 권의 책이 존재한다고 한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한 인간이 평생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책은 계속 태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은 무엇을 기준으로 성립하는가.


우리가 읽은 책은, 많아야 전체의 극히 일부다.
그 일부를 읽고 나서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성급한 확신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필독서를 읽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생각의 방향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각자가 전혀 다른 책을 읽는 사회에서는 엉뚱한 연결이 생긴다. 보건의 해법이 교육에서 나오고, 교육의 실마리가 예술에서 발견되며, 예술의 답이 체육에서 튀어나오는 순간들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지식의 두께보다, 지식의 방향성과 다양성에서 생길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책을 선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감동받은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문장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은 넘쳐나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하기 싫은 출근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책 읽는 시간만큼은 최소한 자발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편식 좀 하면 어떤가.
적어도 독서 앞에서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읽고 싶은 책을 집어 드는 용기야말로, 가장 건강한 독서의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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