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이었다. 벤치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넘어지는 방식도 예전 같지 않았다. 왼쪽 정강이에 피가 났다. 조금 과장하자면, 뼈가 보였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통증보다 먼저 느껴진 건 주변의 공기였다. 분명 여러 사람이 봤을 텐데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괜찮냐는 말도 없었다. 모른 척해주는 그 태도가 배려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먼저 욱신거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상처 위에 피가 굳어 있었다. 약국에서 소독약과 연고를 사 와 며칠 동안 혼자 상처를 돌봤다. 다음 주에는 제주도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걷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여름이라 반바지를 입어야 했다. 누가 봐도 다친 다리였다. 괜히 설명해야 할 것 같고, 괜히 질문을 받을 것 같아 조금 신경이 쓰였다.
제주도에 간 이유는 여행이라기보다 인사에 가까웠다. 와이프의 가족들을 뵙는 자리였다. 예상대로 다리를 보자마자 걱정이 쏟아졌다. 그날 저녁, 근처 병원을 찾아보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차를 얻어 타고 동네 의원에 갔다.
주황색 벽돌로 지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간판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글자는 많이 바래 있었다. 처음엔 여기가 맞나 싶었다. 서울에서 보던 병원들과는 많이 달랐다. 안으로 들어가니 시간도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의사는 할아버지였다. 말이 많지 않았고, 그렇다고 급하지도 않았다. 상처를 보고, 손으로 가볍게 눌러보고, 지금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는 동안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가끔 그 병원이 생각났다. 특별할 것이 없었던 병원. 그런데도 오래 남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동네에는 그런 병원이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런 병원을 지나쳐 온 건 아닐까.
우리는 병원을 볼 때 무엇을 먼저 볼까. 유리창의 크기일까, 인테리어의 밝기일까. 아니면 간판의 새로움일까. 그런 것들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그날 제주도의 병원을 떠올리면, 신뢰라는 것이 꼭 눈에 잘 띄는 것에서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병원은 여전히 주황색 벽돌 건물일 것이다. 간판도 여전히 바래 있을 것이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조용히 치료를 받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은, 이유 없이 그 병원을 오래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