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어느 날, 업무 메일들 사이에 낯선 제목 하나가 섞여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더는 신경 쓰지 않던, 아니 애써 잊고 지내던 학술지에서 온 메일이었다.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저 자동 발송 안내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몇 줄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논문을 실었던 학술지가 등재후보지에서 KCI 등재지로 승급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뒤늦게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연말정산처럼, 몇 년 전의 고생이 이제야 계산되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2025년에 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졸업을 앞두고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과연 졸업은 할 수 있을까’였다. 성적이나 요건 때문이 아니라, 내 논문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연구는 스스로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연구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질문, “그래서 이 연구가 말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문장이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문제의식은 흐릿했고, 방법론은 조심스러웠으며, 결론은 지나치게 얌전했다. 다른 논문들을 읽을수록 내 연구는 점점 더 축소되어 보였다. 학문이라는 거대한 풍경 앞에서, 내 작업은 메모지 한 장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지도교수님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연구가 부족하다는 말 대신, 한 번 더 밀어보자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학술지에 투고해 보라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전혀 나를 모르는 연구자들의 판단을 받아보라는 조언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달랐다. 혹시나 그동안 품고 있던 의심들이 모두 사실로 확인될까 봐, 그게 두려웠다. 피어리뷰는 연구를 성장시키는 제도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 말이 위로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첫 투고에서 내가 세운 기준은 단순했다. 최대한 빠르게 피어리뷰를 받을 수 있는 곳. 결과가 어떻든, 시간을 질질 끌고 싶지는 않았다. KCI 등재지를 선택했고, 지도교수님은 교신저자를 맡아주었다. 얼마 후 도착한 결과 메일에는 두 명의 심사자 의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대문자로 적힌 REJECT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학술지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와 함께, 생각보다 길고 구체적인 리뷰가 이어졌다. 그 파일을 열어놓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화면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에, 그 결과는 깊은 물속으로 한 번 더 밀어 넣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졸업이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고, 무엇보다 이미 상처는 났다. 더 도망칠 이유도 없었다. 리뷰를 하나씩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격처럼 느껴졌던 문장들이, 몇 번을 읽다 보니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지적들은 대부분 정확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피해 갔던 질문들, 애매하게 처리해 둔 논리의 공백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퇴근 후 노트북을 켜고, 다시 자료를 뒤지고 문장을 고쳤다. 그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연구를 한다’는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연구를 다시 다듬고 있을 무렵, 지도교수님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해보라는 제안이었다. 익명으로 거절당하는 투고와 달리, 학술발표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질문은 공개적으로 오고, 반응은 즉각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논문을 계속 가져가려면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결국 지원서를 쓰고, 휴가를 내고, 발표장에 섰다. 발표 직전의 긴장은 새로운 연구를 소개하는 설렘이 아니라, ‘제발 완전히 틀린 연구는 아니라고만 말해달라’는 간청에 가까웠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이 이어졌다. 연구 논리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해석의 범위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놀라웠던 건, 그 질문들이 대부분 내가 이미 고민해왔던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예상 밖의 공격은 없었다. 발표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 연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라는 것을. 그날 이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아주 조금 생겼다.
그 확신은 다시 투고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목표는 ‘게재’라기보다 ‘피드백’이었다. 여전히 빠른 심사를 우선으로 삼았고, KCI 등재후보지에 논문을 냈다. 결과는 Minor revision이었다. 수정 요구는 있었지만, 충분히 설명 가능하고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보완을 거쳐, 졸업 전에 논문은 게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논문이 실리고 나서야 욕심이 생겼다. ‘처음부터 등재지에 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늘 다음 계단을 밟고 나서야 이전을 아쉬워한다.
졸업 이후에는 논문을 거의 잊고 지냈다.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연구는 과거의 일이 된 듯했다. 그러다 2026년, 그 메일이 도착했다. 내가 논문을 실었던 학술지가 등재지로 승급되었다는 소식. 결과적으로, 나의 논문도 KCI 등재 논문이 되었다. 몇 년 전의 선택과 고생이, 아주 늦게나마 정산되어 돌아온 셈이었다.
그 메일을 읽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논문이 대단해졌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시간들은 즉각 보상받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몰입했고, 의심했고, 버텼던 날들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