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대상 성폭력예방교육 모니터링 중이었다. 2시간의 교육 후, 강사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은 어쩌다 이 일을 하시게 됐어요?”
이 질문에 강사는 성폭력예방교육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지만, 질문한 아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 날 남자 성교육 강사를 처음 만나본 것이다. 여자들만 성교육을 한다고 경험적으로 학습한 아이들은 남자 강사의 존재 자체에 이질감을 느꼈나 보다. 때문에 그 아이는 어쩌다 ‘남자가’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질문한 것이다.
남자 성교육 강사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성’, ‘교육’, ‘강사’, 개별적으로도 봐도 남자들의 분포가 확연히 적은 분야인데, 이게 다 합치니 정말 드물다. 학교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교사도 거의 여자들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가정 내에서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전긍긍하는 쪽도, 책을 찾아 읽고 강의를 찾아다니는 쪽도 거의 대부분 여자 양육자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교육은 거의 다 여자들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저기 양육자 성교육 출강을 다녀 봤지만 남자 양육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로 출강하는 교육은 대체로 평일 오전에 잡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업 주부가 아니고서야 찾아오기 힘든 시간대다. 생업까지 쉬어가며 찾아 듣긴 힘들기에 늘 학교의 배려가 아쉽다. 학부모회에서 잡은 교육은 똑같은 학교 출강이라도 토요일 오전에 많이 잡히곤 한다. 그래도 남자 양육자들은 별로 없다. 딱 한번 남자 양육자들이 스무명 정도 참여했던 교육이 있었는데, 대안학교였다. 대안학교 양육자들이라 다르구나 싶었더니, 한 분이 학부모회에서 주최하는 의무 이수 교육이라 참여했다고 귀뜸해주셨다.
남자 양육자들은 대체로 자녀 성교육에 관심이 없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잘 보지는 못하지만 여자 양육자를 통해 전해 듣는 남자 양육자들은 평소에 관심도 없으면서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만 여자 양육자를 탓하고, 남자답게 커야 한다며 아들을 닦달하거나, 속옷만 입고 다녀서 다 큰 딸 보기 민망하게 만들기만 한다. 가정 내 성교육에서 남자 양육자는 딱 그 정도 위치였다. 있긴 한데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아무리 그래도 남자 양육자가 호출되는 순간은 있다. 바로 아들이 질문할 때다. “엄마는 왜 고추가 없어?” 같은 질문에 화들짝 놀란 여자 양육자는 남자 양육자를 찾는다. “같은 남자니까 당신이 좀 설명 좀 해 봐.”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남자 양육자가 좀 도움이 되려나 싶은 순간이다.
내가 만난 많은 양육자들은 딸은 엄마가, 아들은 아빠가 성교육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나보다는 덜 부적절하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자, 그럼 남자 양육자들의 성교육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 남자 양육자들도 아들의 성적 질문을 당혹스러워 한다.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몰라 “크면 다 알게 돼” 라며 어물쩡 넘어간다. 혹은 그런 질문을 하다니 우리 아들이 다 컸구나 남다른 소회를 느끼며 “크면 다 알게 돼” 라고 말한다. 사실 당황하며 어물쩡 넘어가는 건 여자 양육자와 다르지 않다. 다른 부분이라면 아들의 성적 행동을 여자 양육자보다는 덜 문제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야동? 볼 수도 있지. 나도 봤지만 아무 문제 없었어. 자위? 당연히 하는 거 아냐? 우리 모르게만 해라. 여자친구? 사고만 치지 마라. 등등. 남자 양육자들의 아들 성교육은 거의 방치에 가깝다. 내가 만난 여자 양육자들도 이렇게 되리란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아들 성교육에 대한 고민은 다시 여자 양육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사실 남자 양육자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학습한 남성성을 그대로 물려주는 것에 가깝다. 남자 양육자들은 남자의 성욕은 주체하기 어렵다고 배웠고, 그럼에도 사고만 안 치면 괜찮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에 비해 권력에 대한 성찰과 상대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잘 배우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통념에 따르면 남자는 결코 성폭력 피해자가 될리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될 리가 없는데 가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여기에 익숙한 남자 양육자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누구에게나 침해받지 않아야 할 경계가 있다는 것과, 욕망에 따른 책임감, 성적대상화에 대한 비판, 관계맺기에서 필요한 존중과 배려를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방치 이면엔 남성성에 대한 학습 또한 있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여자 양육자들은 딸은 여자 아이라서, 아들은 남자 양육자가 못미더워서, 아니 그 전에 자녀 양육 카테고리 안에 성교육도 포함되니까, 자녀 양육의 많은 부분을 내가 책임지고 있으니까..를 이유로 자녀 성교육을 전담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여자 양육자들이 자녀 성교육을 전담하게 되는 건, 양육의 책임을 한 성별에게 전가하는 성차별의 효과는 아닐까.
성장과정 중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고, 집에서는 감히 물어볼 엄두조차 못 낸 건 남녀 양육자 모두 비슷하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으니 자녀와 성적대화를 나누는 방법도 잘 모를 뿐더러 마음 한구석 불편함이 올라오는 것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녀에겐 조금 더 나은 성교육을 하리라 동분서주하는 여자 양육자에 비해, 머리털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남자 양육자를 생각하면 나는 그 생각을 도저히 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