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머니의 평생
역사는 늘
책 속에만 있는 줄 알았다.
시험 범위에 나오고,
연도와 사건으로 외워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역사는 이미
우리 집 안에 있었다는 걸.
증조할머니의 평생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증조할머니는
6·25 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을 오셨다.
그 선택 하나로
가족은 갈라졌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
그중에서도
증조할아버지는
끝내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증조할머니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그 이름을 놓지 못하셨다고 했다.
살아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저 한 번만이라도
소식을 듣고 싶어 하셨다고.
그 기다림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이산가족이라는 말의 무게
‘이산가족’이라는 단어를
그전까지는
뉴스 속 단어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말은
한 사람의 평생이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시간,
그게 역사가 될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전쟁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덧붙이셨다.
외할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떠났고,
돌아오셨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게 되셨다는 이야기.
그 말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국가유공자라는 이름
두 분 모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으셨다는 말을
어머니는 담담히 하셨다.
하지만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국가유공자라는 이름 뒤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이해했다
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
왜 전쟁을
숫자와 사건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되는지.
그 안에는
이름 없는 기다림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과
보이지 않게 된 눈이
있었다.
나는 이제
다르게 기억한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연결된 삶의 기록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지금의 하루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