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건네받은 부탁

꿈속의 얼굴

by 한동수

어느 날이었다.

아주 또렷한 꿈을 꾸었다.


꿈속의 얼굴


꿈속에서

증조할아버지를 보았다.


사진으로만,

이야기로만 들었던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분은

우리나라 국군의 군복을 입고 계셨다.

낡았지만 단정했고,

어깨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얹혀 있었다.


한마디 부탁


증조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 유해를… 찾아다오.”


그 말은

명령도, 울음도 아니었다.

그저 오래 기다린 사람의

담담한 부탁 같았다.


꿈인데도

이상할 만큼 가슴이 먹먹해졌다.


깨어난 뒤에도 남은 얼굴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그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 군복을 입고 계셨을까.

왜 하필

‘찾아달라’는 말이었을까.


그날,

나는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그 꿈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듣는 이야기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시더니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주셨다.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러시아 연해주 출신이셨다고.


나라를 잃은 시대에

고향도, 국적도

명확하지 않았던 삶.


그 말 한마디에

퍼즐처럼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떠돌 수밖에 없었던 삶


나라가 없던 시절,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사람.


그래서

이산가족이 되었고,

그래서

끝내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던 건 아닐까.


꿈속에서 본 군복은

어쩌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삶’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정체성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은 우연이었을까


그 꿈이

단순한 상상이었는지,

아니면

기억이 나를 찾아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날 이후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나와 이어진 한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유해를

정말로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 또한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나는 믿어본다.


역사는


다시 말을 건다


어느 날,

꿈이라는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잊히지 않기 위해,

사라지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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