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공간, 토스트로 만든다

제8장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드는 방식에 대하여

by 홍다정


재즈 킷사가 ‘듣는 공간’이라면,
쇼와 가정 킷사 ‘사는 공간’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집중해서 경험하기보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이런 킷사는 겉모습에서 이미 분위기를 드러낸다.

1. 킷사 산모리(나고야) 2.킷사 히스이(교토) 3. 킷사 비너스(나라)

오래된 건물, 손때 묻은 간판, 안쪽이 살짝 보이는 창문.


특별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감각은 더 분명해진다.

킷사. 비너스(나라)

낡은 나무 테이블, 빛이 바랜 벽지, 조금씩 닳아 있는 의자. 시간이 쌓이면서 남은 흔적들.


그래서인지 이곳은 꾸며진 공간이라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 공간에는 어딘가 느슨한 공기가 흐른다.

누군가는 신문을 읽고 있고,
누군가는 말없이 커피를 마신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그 안에 머물게 된다.


가정 킷사에 들어가면 나도 종종 다음 스케줄을 미루게 된다.

평소에는 큰 틀만 정해두고 움직이는데, 이런 공간에서는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손님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그 안에 섞여 있고,

책을 펼쳐 읽다가 창밖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옆 테이블의 대화를 흘려듣다가 혼자 웃게 되는 순간도 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여행 중 들른 한 킷사였다.

계속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동경의 킷사’ 그 자체였다.

킷사 산모리 (나고야)

내가 사는 동네였다면, 이유 없이 자주 들르게 될 것 같은 그런 곳.


오랜 시간이 쌓여 있었지만 공간은 놀랄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처럼 보였다.


나는 혼자 여행 중이었고, 다음 이동 장소도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토스트를 세 개 시켰다.

그 순간에는 굳이 어디로 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이곳에는 식사 메뉴가 따로 없고, 토스트만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었다.

기름 냄새가 강한 음식 대신, 가볍게 머물 수 있는 음식으로 공간의 공기를 유지하는 방식.


나는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사장님은 이 50년의 시간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고 했다.


기름 냄새가 아닌, 빵이 구워지는 은은한 향으로 이 공간을 채운다는 것.

그래서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오래 머물게 된다.


나고야는 특히 모닝 문화가 잘 자리 잡은 도시다.

식사라기보다 하루를 여는 시간에 가까운 풍경.

그 흐름이 이어지는 데에는 이런 고집들이 묵묵히 쌓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곳의 메뉴는 종류를 늘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공간을 설명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토스트와,

가장 많이 나가는 토스트,
그리고 궁금했던 메뉴를 하나 더 골랐다.


먹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기본 토스트는 믹스 토스트였다.

편의점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집에서 만들어 먹던 토스트에 가까운 구성.

따뜻하게 구운 식빵 사이에 계란과 햄, 오이, 양상추가 들어간 단순한 조합.

특별할 건 없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편안해지는 맛이었다.


두 번째는 후르츠 산도였다.

요즘처럼 크림을 가득 채운 형태가 아니라, 생크림과 통조림 과일로 만든 조금은 투박한 모습.

어디선가 본 적 없는 장면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바나나와 초코시럽이 들어가 있었다.

옛날 방식 그대로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한 번 더 변형된 느낌.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고른 건 단호박 토스트였다.

달콤한 맛을 예상했는데,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짭짤한 늙은 호박에 치즈를 더한 구성.

묵직하게 눌리는 맛이었고, 디저트보다는 식사에 가까웠다.


이 세 가지를 먹고 나서야 왜 이곳이 토스트만으로 메뉴를 구성하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같은 ‘토스트’라는 형태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쇼와 가정 킷사에 들어서면 늘 액자와 꽃이 함께 놓여 있었다.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오래 시선이 머문다.

킷사 히스이(교토)

금색 테두리의 액자와 시간이 묻은 그림들.

창문이 없는 공간인데도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작은 꽃이 공간을 조금 밝게 만든다.

조금 더 머물다 보면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천천히 보이기 시작한다.


수조 안을 유영하는 금붕어, 한쪽에 조용히 놓여 있는 자라.

특별한 설명은 없지만, 그게 이 공간들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디저트도 비슷했다. 익숙한 구성인데도 이상하게 다르게 남는다.


메론펀치도 그중 하나였다.

맛보다 먼저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사실 이 디저트는 맛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달고, 단순하고, 어딘가 익숙한 멜론 시럽의 맛.

잘 만든 디저트라고 보기도 어렵고, 취향에 따라서는

조금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건 맛으로 먹는 디저트가 아니다.


이 디저트는 맛이 아니라

어떤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


젤리 위에 올라간 과일과 크림, 그 위에 얹힌 작은 장식들.

사장님의 취향대로 완성된 구성.

맛있어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주문하게 되는 디저트.


어릴 때는 먹고 싶어서 고르던 디저트였고,

지금은 떠올리고 싶어서 고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디저트 컵을 찾아 경매 사이트에서 낙찰을 받았고,


여행이 끝난 뒤 그 기억을 따라 집에서 메론펀치를 만들어봤다.

완전히 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장면은 만들어졌다.

왼. 산모리 메론펀치 오. 내가 만든 메론펀치.

그건 디저트를 만든 게 아니라, 그날의 시간을 다시 꺼내본 느낌에 가까웠다.


내가 생각하는 쇼와 가정 킷사는, 실제로 겪어본 적 없는 장면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한 풍경이다.


어릴 때,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런 걸 먹고 있었을 것 같은 느낌.

실제로 그런 기억이 있는 건 아닌데, 괜히 떠올리고 싶어진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가면

엄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나는 옆에서 파르페를 먹고 있을 것 같은 곳.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토스트를 시켜놓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지고,


혼자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대로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은 공간.


그래서인지 나는 이런 킷사에 들어가면 다음 일정이 있어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꼭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상하게 더 오래 남는다.


재즈 킷사가 음악을 중심으로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쇼와 가정 킷사는 사람의 생활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결국 이 공간은 누군가의 삶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이런 공간 앞에서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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