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 듣는 방식이 공간이 되고, 요리는 그것을 설명한다
재즈 킷사는 카페가 아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공간을 지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요리까지 바꿔버린다.
재즈 킷사는
다른 킷사보다 훨씬 깊고, 밀도가 높은 공간이었다고 한다.
큰 스피커, 빽빽하게 꽂힌 레코드,
어두운 조명과 바 좌석.
사진과 기록으로 접한 그 공간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라기보다,
음악을 듣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에 가까워 보였다.
사람들도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각자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였고,
그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조금 다르게 흘러갈 것 같았다.
무언가를 하며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오직 ‘듣는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
재즈 킷사에 대해 찾아보면서,
그 공간이 왜 그렇게까지 독특하게 느껴졌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단순히 음악을 틀어놓는 공간이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공간을 만들어내는 곳에 가까웠다.
가볍게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처럼
온전히 집중해서 듣는 방식.
그래서인지 재즈 킷사는 카페라기보다는
조용히 머무는 공간에 더 가까워 보였다.
분명한 건,
이런 재즈 킷사의 형태가
지금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술을 함께 파는 공간이 많아지고,
대화와 분위기를 중심으로 한 형태로
확장된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사람을 오래 머물게 만들고,
머무는 시간은
또 다른 형태의 소비로 이어지니까.
나는 일본에 살면서
다양한 킷사텐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들도 많다.
재즈 킷사 역시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는,
조금은 거리감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대신 이번에 한국에 잠시 들어가면서,
서촌의 재즈 킷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재즈 킷사의 분위기를
꽤 잘 살려낸 공간이었다.
대표적인 메뉴는 타마고산도와 나폴리탄.
내가 알고 있던 킷사의 구성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나폴리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케첩 중심의 직선적인 나폴리탄과는 다르게,
훨씬 더 정돈되고 세련된 방향으로 풀어낸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맛이 강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전체적인 간은 부드러웠고,
여러 부재료들이 층을 이루며
하나의 균형 잡힌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같은 ‘나폴리탄’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이건 더 이상 나폴리탄이 아니라
‘나폴리탄을 해석한 파스타’에 가까웠다.
그곳에는 카레 파스타라는 메뉴도 있었다.
보통 킷사에는 그 가게만의 ‘특제 카레’가 있다.
그래서 나는 킷사를 떠올릴 때,
나폴리탄만큼이나
일본식 카레를 가장 일본 답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카레라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된다.
그래서 카레는
단순한 메뉴가 아니라
그 가게의 방식이 드러나는 음식에 가깝다.
어떤 곳은 카레에 쏟는 밀도가
전문점에 가까울 정도이고,
그만큼 킷사에서 카레는
식사가 아니라
공간의 결을 드러내는 요소로 작동한다.
그래서인지
킷사의 카레는 늘 기대하게 된다.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만난 재즈 킷사의 ‘카레 파스타’는 흥미로운 시도였다.
보통 카레는 밥이나 우동으로 풀어내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을 파스타로 변형해
나폴리탄과 같은 위치의 메뉴로 내고 있었다.
익숙한 틀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해석.
그 접근이 한국적인 방식처럼 느껴졌다.
킷사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메론소다 역시
꽤 인상 깊었다.
이곳에서는 메론소다 대신
키위 에이드로 표현되고 있었다.
형태는 그대로 두고, 내용만 바꾼다.
그 작은 변주만으로도
이 공간이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데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눈에 띄는 건,
한국의 재즈 킷사들이
일본의 재즈 킷사 감성을 꽤 잘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일본의 재즈 킷사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먼저
가보고 싶은 공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취향과 완전히 맞는 방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흥미가 생기고 있는 영역이다.
같은 ‘킷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의 결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공간이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는 공간을 보지만,
결국 그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요리였다.
재즈 킷사가 ‘듣는 공간’이라면,
다음은 조금 더 생활에 가까운 형태의 킷사를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