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 호텔 레트로 & 유럽 동경 킷사
두 공간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다르다. 둘 다 서양을 향하고 있지만,
하나는 정리된 현실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감정으로 만들어진 유럽에 가깝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쇼와 레트로’라는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쇼와 레트로는 단순히 '쇼와시대' 과거 전체가 아니라,
1950~70년대 일본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감각에 가깝다.
당시 일본에는 서양 문화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생활 안에서 조금씩 바꿔 받아들였고,
그 결과 남은 것은 모방이 아니라
서양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낸 일본식 낭만이었다.
호텔 레트로 킷사는 그 동경을 가장 정돈된 형태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브라스 조명과 카펫 바닥, 클래식한 가구들.
전체적으로 밝고 질서가 있다.
이곳에서는 빛이 음식 위에 따뜻하게 내려앉는다.
평범한 디저트도 한층 화사해 보이고, 공간의 인상도 자연스럽게 밝아진다.
카펫은 걸음을 조용하게 만들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까지 부드럽게 감싼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몸이 조금 느슨해지고, 먹는 속도도 천천히 흐른다.
그 감각은 음식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오므라이스, 푸딩, 도리아 같은 메뉴들. 서양에서 온 음식이지만, 일본식으로 다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이 음식들은 고급 요리라기보다는 정성스럽게 차려낸 ‘대중적인 사치’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조금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처럼.
나폴리탄 역시 그렇다.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시작은 호텔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마주하는 나폴리탄은 조금 더 단정하고,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에서, 어떤 맥락으로 내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나는 나폴리탄을 꽤 집요하게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킷사를 다니며 각기 다른 나폴리탄을 먹어봤지만,
정작 그 시작으로 알려진 요코하마의 뉴 그랜드 호텔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나폴리탄뿐만 아니라, 시푸드 도리아와 아라모드 역시 그곳에서 시작된 요리다.
그래서 그곳은 단순한 ‘유명한 호텔’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진 일본 경양식의 출발점처럼 느껴진다.
유럽 동경 킷사
반면 유럽 동경 킷사는 조금 더 감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아치형 창문과 레이스, 엔틱 가구와 장식들.
분명 아름답지만,
어딘가 과하게 꾸며진 느낌이 남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선이 오래 머무는 물건들이 있다.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인형, 표정이 없는 장식들.
예쁘지만, 동시에 낯설다.
그래서 이 공간은 현실이라기보다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
이곳에서 음식은 식사라기보다 풍경에 가깝다.
엔틱 컵에 담긴 홍차,
조각 케이크, 정갈하게 놓인 샌드위치.
무언가를 먹고 있다기보다, 그 장면 속에 머물고 있는 감각. 그래서 이곳의 디저트는
호텔 레트로보다 가볍고, 더 감정적인 방향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오래 남기보다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가까웠다. 결국 두 공간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진다.
호텔 레트로가 정리된 현실이라면, 유럽 동경 킷사는 감정으로 만들어진 장면에 가깝다고 느꼈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각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쪽을 선택하게 된다.
어쩌면 그 선택은,
우리가 어떤 방식의 ‘낭만’을 더 믿고 있는지를,
생각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