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 '가능한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자마자,
내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를 설득할 계획서를 쓰고 있었다. 막연한 다짐 대신, 최대한 구체적으로.
연도별로, 계절별로, 내가 무엇을 할지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가능한 것’만 적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을 쓰고 있었다.
처음부터 요리학교를 생각했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내 선택지 안에 없던 세계였다.
지금의 내가 당장 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어학교였다.
일본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 있었지만,
그중에서 내가 현실적으로 잡을 수 있는 건 어학교뿐이었다.
어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타베아루키(맛집 탐방)’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자. 워홀 때는 버티듯 배운 일본어였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현실적인 계획이었다.
어학교를 알아보려고 연결 업체에 전화를 했다.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시기를 물었더니 3개월 뒤에 바로 입학 가능한 학교가 있다고 했다.
하필이면 그 학교는 ‘공부 안 하고 놀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워홀 때 알게 된 언니가 다녔던 곳이라 이미 어떤 분위기인지 알고 있었다.
반대로,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따로 있었다.
커리큘럼이 탄탄했고, 공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대신 거기는 6개월 뒤에나 입학이 가능했다.
잠깐 고민했지만, 결론은 금방 나왔다.
‘오히려 잘됐다.’
돈도 더 모을 수 있고, 집도 천천히 제대로 알아볼 수 있고,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니까.
나는 주저 없이 6개월 뒤 입학을 선택했다.
기본 틀을 잡고 나니 이상하게 욕심이 났다. 어학교 생활 정도는 내 힘으로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다음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계획서 끝에 말도 안 되는 단어 하나를 적어 넣었다.
일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품는 이름이 있다.
바로 전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로 꼽히는 '츠지조리사전문학교'다.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학교였다.
우리에게는 <흑백요리사>로 다시금 실력을 증명한 최강록 셰프를 비롯해,
정호영 셰프, 칼마카세(안유성) 셰프 등 국내 최정상급 요리사들을 배출한 '일식의 사관학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곳을 넘어,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와 철저한 기본기를 몸에 새기는 곳.
그곳은 요리를 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성지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높은 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처음부터 계획에 있던 선택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저 동경에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이름을 적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그건 욕심이 아니라, 내가 결국 가게 될 방향 같았다.
아르바이트로 배우는 것과 전문적으로 배우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고,
그건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그 뒤로는 멈추지 않고 쏟아냈다. 거기서 내가 어떻게 배우고 성장할 것인지, 졸업 후에는 어디서 경험을 쌓을 것인지. 무엇보다 아빠가 두 번 물어볼 필요 없도록 학비가 정확히 얼마인지, 그중 내가 매달 얼마를 보탤 것이며 생활비는 온전히 내 힘으로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까지 숫자로 증명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계획서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아빠에게 보여줬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한번 말이라도 꺼내보자” 그 정도였다.
아빠는 계획서를 한참 보더니, 잠깐 생각하시고 말했다.
“가라.”
그 한마디로, 내가 상상으로만 그리던 세계가 현실이 됐다.
어학교는 내가 책임지고, 요리학교는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혹시나 해서 꺼낸 선택이 진짜 선택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나는 이미 발을 들여놓은 뒤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