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현 씨, 우리 팀에 왜 왔어?”
재경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그가 따른 술잔에 채워지는 술을 바라보았다.
“돈 벌어야죠.”
진심을 숨긴 대답이 재경에게 닿았다.
“아니 왜 하필 이 회사에 왔냐고. 준현 씨 스펙이면 더 좋은 곳에 가야지 않나?.”
질문은 가볍게 날아와 묵직하게 꽂혔다. 큰 이유는 없다. 그래야 했다. 내리는 선택은 가벼워야 했다. 생각이 깊으면 후회도 깊은 법.
어쩌면 그때 이미 재경이 말한 ‘위상동형’을 이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시험에서 고쳐 쓴 답은 항상 오답이었다. 틀리고 맞고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갈등이 실패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이다. 선택 앞에서 하는 갈등은 때로 틀리는 일보다 심하게 고통스럽다.
겨우 맞춘 정답이 본전치기도 못 하는 이유다. 차라리 갈등 없이 틀린다면 덜 고통스러울 일이다. 재경의 질문을 고민해봤다. 결론은 이랬다.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깊은 생각하지 않고도 도달한 것이 어쩌면 진짜 정답이다.
그 철학이 그녀를 선택하게 했다. 조금만 더 깊더라면 그녀를 의심했어야 했다. 다시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그녀와 즐겁게 지내야 했다.
한 번을 생각하면 이별이 맞고, 그것을 조금 더 길게 빼면 만남이 맞다. 이 또한 위상동형인가.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나는 그녀와 나의 관계가 수레바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바닥을 밟고 있나 싶으면 위로 솟구치고, 위로 솟구친다 싶으면 바닥을 밟고 있는…. 그러면서 꾸준하게 앞으로 진행되고 있는 수레바퀴 말이다.
“우리 앞으로 자주 보고 해야 하는데, 편하게 형, 동생 사이로 지내는 건 어때요?”
재경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통보했다. “그러세요.” 그는 내 술잔에 술을 채워 놓고 말했다.
“술을 채우면 술이 차는 기고, 물을 채우면 물이 차는 기지. 근데 있다아이가. 참 당연한 긴데…. 가끔은 물을 채워 놓고도 술이 차 있길 바라게 된다 이기지….”
그는 서울서 정착해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가족도 없고 동생 놈 하나 있다고 했다.
“이놈이 참 골칫거리야” 동생은 그에게 많은 걸 의지한다고 했다. 동생을 기숙 재수학원에 보낸 재경은 동생 뒷바라지를 하는 모양이었다.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도 무역회사를 찾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둬야지 않겠나. 물을 채웠으니, 물이 차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그쟈?”
그의 동생과의 인연은 참으로 기구한 것이다. 그들의 인생이 기구하다는 사실은 저장된 스마트폰 속 이름을 보고 알았다.
“김예지? 성이 ‘송’씨가 아니네요?”
“친동생이 아이니까.”
그는 자기 동생이 친동생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그녀를 알게 된 건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라고 했다.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자신의 자취 집으로 돌아간 재경은 본인의 집에서 음식을 훔쳐 먹고 있는 십 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 아이랑 같이 살기로 했어요? 그래도 여자아이인데?”, “아니제, 처음에는 잘 추슬러서 보내려고 했제. 근데 있다아이가. 이 가스나가 부모가 없는 기라. 그래가, 시설에 있다가 거기 원장한테 뚜까맞고, 추행 같은 것도 당한 모양이제? 우짜노.”
그가 말했지만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자 혼자 사는데 쫌 그러지 않나.”
“그라제. 근데 세상이 그렇게 상식적이믄, 그년이 뚜까맞고 도망 오는 일이 있겠나?”
그래도 그 관계가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그럼 우쩌노. 중학생이 갓 넘은 놈이 배고파서 왔다는데, 밥 맥이고 이래저래 말하다보니, 이래됐지.”
이 말에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관계가 참 복잡하다는 것 정도는 이해했다.
“참 대단하시네요. 둘 다.”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한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도통 이해되지 않는 관계였다. 이해한 척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 힘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믿기로 한 것은 그 뒤로 한참이나 지나서다.
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보다 더 소설같이 변했을 때, 나는 그때 서야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세상에는 언어로 표현하면 괴상망측하고 이상한 일투성이다. 사람 대부분은 그러나 그런 상황을 글이나 말로 듣는다. 세상이 괴상망측해지는 건, 경험 없이 말과 글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주 탄생 이래로 인간이 ‘언어화’한 것은 아주 극소수다. 우주 곳곳에는 아직도 이름이 없고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투성이다.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나가던 노자는 문지기에게 5,170자로 된 얇은 책을 전달했다. 그 책의 첫 장에는 ‘도가도 비상도’라고 적혀 있었다. 우주를 담았다는 도경의 첫 문구.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는 도가 아니다.’ 이 첫 구절은 나머지를 모두 포용한다. 노자에 따르면 세상 만물은 모두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지성의 크기로 대상을 난도질하여 작은 단위로 소화한다. 우리 관념에만 존재하는 언어로 압축하고 축소하다 보니, 대상의 본질은 사라진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개는 무자비한 언표는 그렇게 지극히 듣고 말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정보만 넘긴다. 고로 우주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할 일투성이다. 그러니 우리 사는 세상도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이상한 일들이 아니다. 현상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할 뿐,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녀는 어찌어찌하다가 검정고시를 치르고 지금은 대입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그렇다고 해도, 둘은 서로 남이면서, 나이 차이도 그닥 나지 않는다. 동거하는 연인이거나 그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때 재경의 말처럼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말이나 글로 이해시키기는 참으로 힘들다. 흡연실 문틈을 파고 새어 나오는 담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은은하게 현실로 파고든다. 그녀가 나와 함께 했던 시간도 그러했다. 누군가가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관계. 그런 대화. 그런 일상. 그런 것들이 지금, 이 순간 어사무사하게 기억난다. 그 관계는 그 기억만큼이나 모호하고 이상했다.
“당신 전화기, 와이파이 켜있어? 빨리 꺼.”
“응? 와이파이는 왜?”
“다른 건 묻지 말고 어서 와이파이를 꺼.”
그녀와의 대화는 남달랐지만 그렇게 위험하진 않았다. 그녀는 내가 하기 힘들만 한 부탁은 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내 능력에서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작은 일부터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재경은 쉬지 않고 말했다. 그의 말은 워낙 빠르고 많았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는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혹시 우리 회사에 괜찮은 사람은 없나?”
급하게 전환되는 화제에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내 뒷자리에 여사원 어때?”
“지현 씨요?”
“아. 그분 이름이 지현이가?”
“네. 신지현 씨로 알고 있는데요.”
술이 들어가자,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투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 얼굴이 빨개진다. 마법 같은 일이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투명한 물약. 술은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진한 중독성과 의존성.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까지.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생각나게 했다.
“지현 씨, 괘안든데?”
재경은 말했다. 지현의 얼굴이 순간 떠올랐다. 그녀는 눈동자가 유난히 검고 깊었다. 눈 속에 검은 동그라미가 마치 블랙홀 같았다. 뚫려 있고 비어 있는 구멍이 아니라 꽉 들어차 있는 질량 가득한 공간. 한 점. 그 블랙홀. 거기에 빨려 들어가면 시공간이 왜곡된다. 사실을 안다. 강력하게 빨아드리는 중력에 이끌려 그때의 나는 사건의 지평선을 넘었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곳에서 나는 그녀의 첫인상을 느꼈다. 강렬했다. 사교적이지 않지만 잘 웃는 편이었고, 내성적이지만 주변에 사람이 항상 있었다. 그녀를 떠올리기만 하면, 가장 먼저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언제든 그 안으로 빨려갔다.
재경은 그 뒤로 지현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내 머릿속에 그녀는 다시금 떠올랐다. 재경이 쏘아 올린 첫 번째 화살이, 두 번째 화살로, 그리고 세 번째 화살로 무한 재생산되면서 내 머릿속에 꽂혀 들어왔다. 다음 날, 그녀의 자리를 살폈다. 그녀의 자리는 모니터를 넘어, 사선 방향에 있었다. 나는 항상 모니터 우측에 체크리스트를 붙였다. 그곳에 그것을 붙이면 그 얼굴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이었고 다음에는 습관이었다. 그녀를 봤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정수리가 고작이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항상 커다란 리본 머리핀이 있었다. 연보라색 머리핀. 리본의 기억이 뚜렷한 건, 그 머리핀이 본질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핀은 머리를 고정하지 않고 겨우 매달려 있었다. 머리를 고정하기 위한 머리핀이 그저 매달려 있기에 최선이다. 언제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녀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 가여운 머리핀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존재의 본질을 잊어버린 머리핀은 그녀를 바라보는 나를 닮았다. 가까스로 거기에 매달려 존재만 증명할 뿐, 스스로 존재를 잃어가고 있는 나 말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면 머리핀은 꽤 불편한 위치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그러다 퇴근쯤에는 머리 끄트머리 이상한 자리에 있었다. 자기 관리를 잘해 보이는 사람인데, 이상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머리핀을 보니 칠칠하지 못하여 보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인보이스 하나 부탁드릴께요. 제 컴퓨터에는 공유된 게 없어서요.”
부탁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답했다. 조용히 마우스를 딸깍거린다.
“지현 씨, 죄송한데, 혹시 머리핀은 일부러 밑에 하는 거예요?”
웃었다. 그녀가 머리를 더듬거리다가 손끝으로 머리핀을 만졌다. ‘왜 자꾸 내려가지.’ 그녀도 웃었다. 그녀는 머리핀을 다시 정돈했다.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그녀는 당황했다.
“네?” 그녀가 되묻는다.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네. 라고 하신 거죠? 내일 퇴근하고 9시에 봬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인보이스를 출력하고 넘겨줬다. 얼굴이 붉어졌다. 겨우 존재만 증명하던 그녀의 머리핀에 시선을 둔다. 헛기침 후에 정돈된 그녀의 머리핀을 다시 살폈다. 그나마 보였던 그녀의 빈틈이 말끔하게 채워 진 듯했다.
“여기요.” 그녀는 인보이스 내밀었다. 그것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의미 없는 인보이스를 받아서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는 메신저가 있었다.
“영화는 제가 고를게요. 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