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우는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수소는 불에 아주 잘 타는 기체잖아.”
“근데?”
“산소는 불이 잘 타게 도와주는 기체고.”
“그래서?”
“근데 왜 수소 2개랑 산소 하나가 만났는데, 왜 물은 불에 잘 타지 않는 걸까?”
문뜩, 그의 질문을 생각해봤다.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것처럼 조화란 단순하지 않다. 산소와 수소가 그렇다. 불이 타기 위해선 수소는 산소와 결합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물속의 수소는 산소와 이미 최대로 결합한 상태다. 고로 물은 더 이상 연소하지 않는다.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는 누군가도 지나치게 최대로 결합한다면 완전히 다른 성질로 바뀐다.
누군가와 최대한으로 결합한다는 것은 고로 서로서로 모습을 잃는 과정이다.
관계가 달라졌다. 동료에서 연인으로. 눈빛을 다르게 하는 것은 가능한가. 동료로 지내다가, 연인이 되기로 했다면 눈빛은 어떻게 달라져야 맞는가. 그 경계가 칼처럼 날카롭지 않다. 무디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칼처럼 날카롭다.
그녀는 동료다.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숨길 수 없는 짜증이 올라왔다. 연인으로 완벽한 그녀지만 일할 때는 젬병이다. 그러나 동시에 연인이 됐다. 짜증은 숨겨야 하는 감정이 됐다.
어정쩡한 교집합 상태로 그녀는 내게 들어왔다. 교집합. 의미 있는 말이다. 상대와 나의 일부가 공유되는 관계. 교집합은 공유하지 않는 여집합을 만든다.
겹친 벤다이어그램에서 교집합을 뺀 나머지 부분. 그것 때문에 상대는 상대가 된 것이다. 같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공유하기 때문에 공유하지 않는 부분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재경의 사랑 공식이었다. 교집합 때문에 서로가 연결되고 섞이고 끌리고 있지만 언제나 반대쪽 여집합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재경의 수학적 논리가 병우의 물리학적 논리와 결합했다. 그렇다. 여집합이 곧 사랑의 존재 이유다. 수소와 산소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 둘 다 자신의 강점을 발화하지만, 지나치게 결합하면 모두를 잃는다.
재경은 그의 동생인 예지와의 관계를 그렇게 설명했다.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교집합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집요하게 동화돼선 안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든 원소를 공유하고자 한다. 그러면, 두 개의 객체는 하나의 합집합이 된다. 물처럼 상대도 나도 모두 잃어버리는 관계.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안타깝게도 하나의 존재는 사라진다. 어쩌면 두 개의 존재가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병우가 말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붙어 있으면 연소는 완성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원치 않던 다른 성질이 된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착각. 그것이 폭력이다. 어쩌면 그녀와 나를 맞추고자 했던 여러 시도와 노력이 일종의 폭력이었다.
사랑은 그 순간 사랑이 아니라 정복으로 변한다. 역사에서 제국주의는 그렇게 시작했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대에게 상대에게 넘기는 행위. 그 무역 행위가 제국주의의 시작이다.
공장이 기계화되고 생산품이 더 많이 나오자, 공산품의 가격은 엄청나게 내려갔다. 저렴한 물건을 배에 싣고 했던 비즈니스는 그렇게 식민지를 건설하고 제국주의가 됐다. 이것을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에게 저렴한 물건을 공급하고, 상대의 원료를 대량으로 구매해준다는 논리는 그렇게 이타적인 합리화를 통해, 가장 이기적인 존재가 됐다. 현대의 무역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은 것은, 그것이 폭력으로 변한 두 번의 경험으로 얻게 된 역사적 교훈이라고 했다. 각자 독립적인 형태로 자유 무역하는 현재도 완전히 이타심을 가장한 이기심이다.
상대와 나를 완전히 공유하는 사랑 그것은 상대든 나든, 그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다. 무역회사를 다니며 무역이 물리학과, 수학의 연장이라는 생각했다.
사랑은 스릴 넘쳤다. 그녀와 나는 시차를 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녀가 나가면, 얼마 뒤 내가 따라나섰다. 내가 나가면 그녀가 따라왔다. 사무실 한층 밑 휴게실이 만남의 장소였다. 그녀를 향하던 두 개의 눈빛 중 하나는 그 휴게실에서야 꺼낼 수 있었다.
다수에게 해야 할 비밀이 생길수록 사랑은 커졌다. 이는 게임중독과 같았다. 중독은 제한된 시간에 이뤄야 할 목적이 클수록, 그것이 성장한다는 확신이 있을수록, 성취감이 클수록, 지속적이고 빈번하며, 반복적일수록 강해졌다.
횡으로 우리의 관계를 몰라야 할 이들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동시에 가장 먼 곳이 아래층 휴게실이었다. 그 스릴감은 ‘사내연애’가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헤어나지 못할 중독을 경험하며 그녀에게 조금씩 동화되고 있었다. 끓는 물의 개구리처럼 천천히, 폭발해야 할 수소가 산소를 만나 물이 되는 것처럼 아이러니하게, 두 개의 벤다이어그램이 점차 하나의 합집합으로 섞이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