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장편소설] 그녀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_3화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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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선택한 영화는 피아노를 치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음악의 선율, 영상미. 그것이 주인공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제가 피아노를 전공했었거든요.”

그녀가 운을 띄웠다.


“우리 회사 직원분들 전공이 참 독특하네요.”

눈은 그녀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길고 얇게 빠진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에 잘 어울렸다.


“피아노는 참 매력적인 악기에요. 검정과 하얀 건반이 위아래로 균형을 잡고 있잖아요. 왜 거기에 하얀색과 검은색을 칠해 놨을까요?”

나는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


“피아노의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지만 빨간색과 파란색, 초록색, 보라색 같은 피아노 건반은 본 적이 없어요. 왜 검은색이 위로, 하얀색이 아래로 갔을까요?”

반농담 같은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피아노 건반에는 아래가 검고 위가 하얀색인 것도 있어요.”

바로크 시대, 오르간이나 쳄발로는 그 색깔이 정반대였단다. 아마도 아래쪽 건반에 하얀 상아를 붙이면서 타격감이 좋아 바뀐 모양이었다. 하얀색이 검은색이 되고, 검은색은 하얀색이 된다. 애초에 정반대이지만, 서로 같은 것이고, 분리되어 있지만 섞여 있고, 어쨌건 그 역할은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피아노가 가진 매력이었다. 공대생이 음대생을 만난 모순이지만 거기에는 분명 조화로운 균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주인공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자,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손가락은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손이 곡을 연주하고 있는지, 곡에 맞춰 손이 춤을 추고 있는지, 헷갈렸다.


“참 아이러니하죠? 피아노처럼 치는 타악기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게…. 친다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잖아요?”

그녀는 웃었다.


“피아노는 현악기에요. 타악기가 아니라.”

그녀는 피아노를 사랑한다고 했다. 자신이 피아노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것은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소리가 무너진다. 적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야 하고 끊임없이 관리해 줘야 한다. 피아노가 갑자기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은 그것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기간 방치되고 조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아노는 음을 잘 조율해 줘야 해요. 현이 무너지면 음률이 틀어져요. 이렇게 조현하는 것이 꽤 까다로운 작업이에요.”

웃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지만, 그녀는 웃었다. 얼굴 뒤에 그늘이 보였다. 그러나 피아노 이야기만 나오면 그녀의 표정은 음악만큼이나 아름답게 변했다. 뚜껑이 덮여 있는 피아노는 좀처럼 내부의 현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건반과 달리 그 안은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다. 피아노 처럼 그녀도 ‘조율’이 필요해 보였다. 이것은 내가 찾은 그녀와 피아노의 공통점이었다.


“지현 씨, 혹시 만나는 사람 있나요?”

“네.”

그녀는 답했다. 뜻밖이었다.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왜 남자 동료와 영화를 보러 왔는지 따지고 싶었다. 그녀의 다음 대답이 궁금했다.


“남자 친구분이 오늘 보시면 화나겠다.”

지현은 웃으며 말했다.


“남자 친구라고 할 것도 없어요. 소개받고 몇 번 본 게 다예요. 만나냐고 물었잖아요?”

여운이 있는 대답이다. 그 빈틈에 들어갈 곳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소개받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제가 좀 더 관리했으면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녀의 표정은 자신 없어 보였다.


“관리요? 남자가 그렇게 말해요? 정신이 나갔네요.”

그녀는 웃었다.


“아니에요. 제가 봐도 요즘 조금 살이 좀 쪘어요.”

소심하게 웃었다. 남자의 오만함에 화가 났다.


“참 별로인 사람도 있네요. 그 사람 만나지 마세요. 벌써 싹수가 노랗네요.”

뱉고 보니 주제넘었다. 감정이 이성보다 앞섰다. 자책했다.


“그러려고요. 민주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민주 씨, 사람 보는 눈 있으시네요.”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민주가 보기는 그래도 철학과 출신이잖아요,”


“아 그랬어요?”


어떻게 된 무역회사인지 다양한 전공이 다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이 이처럼 다양한데, 무역학과 출신은 한 명도 없어요.”


“그러게요.”

그녀는 동조하며 그때 민주가 했던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민주의 말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나 조지 소로스도 전공이 철학이란다.


“빌 게이츠가 법학, 수학을 전공했고 마윈도 교육대 출신이래요. 다윈도 생물학자가 아니라 지질학자 출신이죠. 전공이 아닌 곳에서 일해야 오히려 성공한다고 하더라구요. 융합이라너 뭐라나.”


그녀는 웃었다. 그녀는 웃었지만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물리학을 공부했고 무역회사를 선택했다. 단순히 무역밖에 모르는 것보다 더 많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했다.


“민주 씨랑 같이 한 번 봐요. 재경이 형이랑 해서 넷이서 보면 꽤 할 말이 많겠네요.”


“네. 그래요. 생각해보니. 한 명은 피아노, 한 명은 물리학, 한 명은 철학, 다른 한 명은 수학교육학이네요.” 그러고 보니 병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병우는 자신이 물리학을 선택한 이유가 다양성과 융합성 때문이라고 했다. 병우는 한자에서의 물리학 뜻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 물리학은 과학을 넘어 철학을 닮았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녀의 대답이 끝나자, 화는 알 수 없는 희열로 바뀌었다. ‘화’와 ‘희’. 점하나 차이지만, 뒤집혀 바뀌는 걸 보면 이 두 감정의 뿌리가 하나였나 싶다. 재경이 말한 ‘위상동형’이 떠올랐다.


그녀가 와이파이를 문제 삼았을 때, 그때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차려야 했다.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나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혼 생활은 무탈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눈동자를 제외하면. 그녀는 아이의 좋은 엄마이자 현명한 아내였다. 그런 그녀의 속이 조율되지 못한 피아노처럼 꼬여 있다는 사실은 그때도 알고 지금도 알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달랐다. 똑 같은 상황에 점하나가 생기기거나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극한의 사랑의 ‘위상동형’ 그 끝은 정해졌어도 믿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폭력적인 남편의 행태에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녀가 조사관에게 말한 폭력적인 남편의 모습이 궁금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녀의 세계에서 존재할까. 그녀의 그와 나의 그가 다른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녀가 말한 폭력적인 남편의 모습을 스스로에서 찾아보려 했다. 꼬일 듯 꼬여 있는 선들을 헤집고 기억을 정리했다. 그러다보면 서로가 맞잡고 있는 하나의 공통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서로의 역사 사이로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선. 그것들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것을 조율하고 조현하고자 했다. 그 작업은 쉽지 않았다. 나에게 있는 기억이 그녀에게 없고, 그녀에게 있는 기억이 나에게 없다. 내가 맞았다고 하면 그녀가 틀리고, 그녀가 맞았다고 하기엔 내가 틀렸다. 다만 나의 기억은 반드시 틀리지 않았다. 아마 그녀도 자신의 기억을 그렇게 믿고 있겠지.

그녀의 일생은 남편을 만난 뒤부터 꼬였다고 했다. 그 지저분한 시작이 치가 떨린다고 했다. 꼬여 있는 현을 하나씩 풀어보자. 그 실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자. 그러나 내가 잡은 그 현의 끝에는 아름다운 피아노 건반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나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내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몇 번의 데이트 신청을 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어쩐지 항상 거절했다.


“일요일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말해주지 않았다. 비록 거짓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니, 상상력은 점점 극단으로 내달렸다. 그녀의 일요일은 언제나 의문이었다. 그녀는 어떤 약속도 일요일이 아니면 좋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준. 그녀는 왜 일요일마다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일까.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녀의 일요일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녀의 일요일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유학길 밤 중 해골물을 마셨다. 나에게 그녀의 일요일은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거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해골물이라고 생각하고 마시면 토악질이 올라오는 것이다. 다만 모르고 마시면 꿀맛 같은 단수가 된다. 그녀의 일요일을 모르기로 했다. 모르는 것은 단순하다. 호기심을 갖지 않으면 된다. 호기심은 갖지 않는 것은 더 단순하다. 믿어 버리면 된다. 그녀와 나 사이에 생길 조그만 틈을 맹신으로 덮어 버리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할 비밀은 있다. 그녀의 일요일도 그런 종류이지 않을까. 재경의 여동생처럼 논리로 따지고 들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내가 믿고, 내가 보는 것만 진실이라면 우리는 우주라는 현상에서 0.01%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소수점이 두자리라는 것도 어쩌면 대단한 과만일 것이다.


논리로 이해하는 일은 근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일이다. 슈뢰딩거는 양자론의 논리에 헛점을 봤다. 그의 생각에 양자역학에는 헛점이 있다. '고양이'를 예로 들었다. 상자 안에 고양이와 독극물을 함께 놓고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계수기에 망치를 연결한다. 다시 독가스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넣는다. 방사성 물질 원소 한개가 한 시간 내에 붕괴할 확률은 50%. 만약 하나라도 붕괴한다면 망치는 유리병을 깨버릴 것이다. 그 즉시 고양이는 죽는다. 이런 경우라면 상자 속을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어 있거나, 살아 있는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논리인가?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비논리성을 비웃으려 했지만,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이들은 이 찰떡같은 비유를 되려 사용하고 양자역학을 설명한다. 아이러니 하지 않나.


오류를 설명하려는 사고실험이 되려, 그 상태를 잘 설명하는 사고실험이 되어 버리다니, 이렇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의 됐다. 최초 슈뢰딩거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 처럼 말이다. 열어보면 중첩되어 있던 것들이 하나로 결론 지어진다.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최소 살아있거나, 죽어 있는 중첩된 상태로나마 두고 싶지 않을까. 나는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을 그냥 덮어두고 믿어 버리기로 했다. 그녀의 일요일. 나에게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와 같았다. 그것이 몹시 궁금해도 나는 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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