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끓는 물 속 개구리는 어떻게 죽어가나. 자신이 익어가는지 모르는 채로 개구리를 익히는 방법은 물 속의 개구리를 서서히 끓이는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의 독재자는 동물의 권리를 신장하고 평등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집권한다. 그 최초의 선의가 '모두 악을 위한 계획'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초의 의미가 선량하다손 치더라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점차 퇴락하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권력의 횡포는 고인 물이 썪기 때문이지, 썩은 물이 고이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혁명이 다수의 지지를 통해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혁명은 다수를 설득할 '명분'을 갖는다. 조지 오엘의 소설 '동물농장'은 '나폴레옹'이라는 돼지가 '타도 인간'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농장 내에 혁명을 통해 인간을 몰아낸다. 이들을 몰아낸 것은 주동자는 '나폴레옹'이라는 리더지만, 그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친 '메이저'라는 정신적 지주가 그 씨앗이 된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그 역할로 '루소'가 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불합리한 왕정을 비판했다. 정부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고 국민의 동의를 기반으로 정당한 정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명분은 프랑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사상이 되지만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이라는 '황제'를 등극시킴으로써 더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소설의 돼지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자 '스탈린'으로 보여진다.
소설은 프랑스 혁명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다만, 조지 오웰은 소설 '동물농장'에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리더 돼지의 이름을 '나폴레옹'으로 명명함으로써 그 전개와 결과를 시작부터 암시했다. 배경지식을 모르고 본다면 도입 부분에서 최소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나폴레옹'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민중'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한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유럽 전체에 전파하여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퍼트린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렇게 집권한 나폴레옹이 다시 제정을 탄생시켜 스스로 왕보다 더 높은 '황제'가 된 것은 혁명의 아이러니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렇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다. 소설 '동물농장'은 대체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다. 소설은 독특하게도 독자의 해석 방향을 열어 두기보다는 거의 1대 1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러시아 혁명을 비유한다. 앞서 말한 '메이저'는 프랑스 혁명에서 '루소'를 닮았지만, 러시아 혁명에서는 '레닌'과 '칼 마르크스'를 닮았다. 철학은 그 씨앗으로 시작해 '혁명'의 명분이 된다. 다만 '철학이 담던 순수함'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라진다. 혁명의 지도자는 점차 독재적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혁명의 이상과 목표는 아주 조금씩 변화한다. 그 변화는 아주 사소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방식으로 대중을 배신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전혀 다른 시대적, 공간적 배경의 두 사건을 거의 동일하게 다룬다.
기하학에서는 '합동'과 '닮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두 도형이 서로 크기와 모양이 완전히 같은 경우에는 '합동'이라고 말한다. 이는 각도와 변의 길이까지 모두 같다. 반면 두 도형이 서로 크기만 다를 때, 이를 '닮음'이라고 부른다. 닮음은 각도는 동일하지만 변의 길이가 일정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변의 길이에 대한 비율만 조절하면 두 도형은 완전히 일치 하는 하나의 모양이 된다. 다시 말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은 서로 닮은 각도와 모양을 가졌다. 그 비율적인 부분만 조절을 한다면 이 두 사건은 기하학적으로 합동이다. 이런 두 사건의 평행이론적 일치를 조지 조웰은 말하고자 했다. 이는 두 사건에 대한 예시만은 아니다. 모든 혁명이 일어나는 매커니즘이 이와 닮았다. 다수를 설득할 '철학'을 등에 엎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혁명이 일어나면, 혁명은 다시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은 혁명에 의해 무너진다. 대체로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반복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명칭은 다르지만 이 둘을 관통하는 이론이 있다. 그것은 기하학의 '합동조건'을 닮았다. 쉽게 말해 자연과학에서는 '대류 현상'이 있다. 온도가 높으면 기압이 낮아진다. 기압이 낮아지면 위로 올라간다. 온도가 낮아지면 반대로 기압이 높아진다. 기압이 높아지면 아래로 내려간다. 쉽게 말해 물을 끓이면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물은 아래로 내려가며 물이 순환하게 되는데, 이를 '대류현상'이라고 한다. 인간의 사회도 이와 닮았다. 다수 분자의 활동량이 많아지면 밀도는 낮아진다. 밀도가 낮아지면 온도가 높아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위로 올라간다. 반대로 활동량이 작아지면 밀도가 높아지고 밀도가 낮아지면 온도는 낮아진다. 온도가 낮아지면 아래로 내려간다. 다수의 열망은 혁명이 되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역사는 진행한다. 고로 완전히 옳은 것도, 완전히 그른 것도 없다. 어떤 혁명은 어떤 혁명을 뒤집은 것이고, 반대로 어떤 혁명은 어떤 혁명을 닮았다. 그 물고 물리는 닮음의 조건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끓는 물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이기도 하지만 그 끓는 물 자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