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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29. 2024

[생각] 적당한 허영심이 중요한 이유_외모가 중요한 이

"상대를 겉보기로 판단하지마라. 그러나 명심해라. 상대는 당신을 겉보기로 판달할 것이다."

이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한 말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싶다면 대통령처럼 입으세요. 당신이 첫인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뿐입니다."

이는 댄 페냐의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외모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지만, 무조건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만 가꿔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들고,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신체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돌고도는 관계에서 '외모'에 무관심한 사람이 '내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렵다. '외모'와 '내면'을 분리하여, 한쪽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것이 기회비용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쪽 모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

 겉보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과 그것이 '진화론적'으로 당연한 것과는 다르다. 인간은 본래 상대를 빠르게 파악해야 했다. 상대가 적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은 생존에 연관된 문제였다. 첫인상으로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역사에서 죽음을 맞이 해야 했다.

 겉보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도덕적이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이미 현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현상이 이미 존재한다면, 이런 수백만년의 진화론적 결과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겉보기 판단은 위험을 신속하게 인지하고 대응하는데 필수적 요소였다. 고로 인간은 누군가의 외모와 행동을 빠르게 분석하여 그 사람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고, 그것이 생존확률을 높였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면서부터 계급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사회와 계급이 대략 농업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으니, 그 역사는 대략 1만 년은 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만년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특정 조건하에서 대부분의 생명체는 가시적인 진화적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인간도 포함이다. 주로 이들은 환격적 압력이나 자연선택, 유전변이, 인위적 선택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쉽게 말해 일정 유전자 혹은 신체적 특성이 후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만드는 경쟁에서 도태되는 일이 반복되면 유전적 특질은 꽤 빠르게 변화한다. 

 인간의 경우, 여타 동물과는 다르게 사회적 구조를 이루고 살며, 전쟁과 질병에 의해 다수가 희생되는 과정을 겪다보니, 유전적 변이의 진화 속도가 어떤 면에서는 빠르게 진행됐을 수 있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에 뛰어난 이들이 대체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있었으며 이들은 한정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직관적 판단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인간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외모'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의 문명에서는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예술, 철학, 문학, 신화' 할 것 없이 어디에나 등장한다. 중세 시대에는 이것이 종교적 믿음과 결합하여 외모가 내면의 성품을 나타낸다고 연결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이들은 순결하고 도덕적인 인물로, 못생긴 외모는 부정적인 성품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산업화, 현대화된 현재에도 외모는 '능력'과 연결하여 외모가 뛰어난 이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방통'의 죽음을 보면 외모가 사람의 운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알 수 있따. 방통은 촉한의 유비에게 중용된 재상이었으나, 그의 외모가 수려하지 못하여 그 능력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편견과 오해를 받았다.

심지어 인재를 아끼고 탁월한 성품으로 알려진 '유비 현덕' 또한 그의 외형을 보고 크게 실망하는 대목이 나온다.

가끔 우리는 '본능'을 드러내는 것에 '속물'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실제로 '식욕', '성욕'과 같은 본능은 가혹한 평가를 받는데, '음식'과 '성'에 대한 탐욕은 인간이기 이전 '동물'로써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탐욕을 인정하며 여타 동물과 같아진다는 우월함은 '도덕'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사회의 제동장치가 된다. 고로 지나치면 물론 좋지 않지만, 있는 것을 없다고 모르쇠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소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 많은 문학과 철학에서는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며 자원을 절약하는 생활 방식을 존중한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검소함이 지나치다면 그것은 자칫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적당한 사치는 건강한 자기표현의 방식이며, 사회적 기대에 대한 부합이고, 남들에 비해 꽤 신뢰할 수 있는 첫인상을 남길 수 있다. 검소함과 외모 관리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은 개인의 가치판단이 우선 되겠지만, 자신을 위한 적당한 지출에는 자책감을 가져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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