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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Nov 13. 2024

[인문] 해부용 시신이 된 살인자의 이야기?_해부학자의

 19세기 초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버크와 헤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당시 에든버러는 해부학 연구의 중심지였다. 다만 법적문제로 시신 공급이 어려워며 해부학자들은 인체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때 버크와 헤어는 '자연사한 하숙인'을 매장하지 않고 한 해부학자에게 판매한다. 그후로도 도굴을 시작한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후 산 사람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공급하는 방식을 선택한 둘은 열 여섯의 희생자를 만든다. 이들 대부분은 빈곤하거나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살해 방법으로는 목을 졸라 질식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살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러한 방식을 버크의 이름을 따서 버킹(Burking)이라 부른다.

 1829년 이들의 악행은 발각된다. 헤어는 법정에서 면제를 조건으로 '버크'를 고발했다. 헤어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버크'는 2만5천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의 몸은 결국 해부되었고 이 장면을 지켜본 에든버러 의과대학 교수 '몬로'는 펜을 꺼내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글은 교수형에 처해진 윌리엄 버크의 머리에서 나온 피로 쓴 것이다."

 버크의 유골은 2022년 에든 버러에서 열린 해부학 박람회에 전시 되었다. 또한 버크의 살가죽은 기념 수첩으로 장정되어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사람들을 살해하고 해부용 시신으로 판매하던 버크의 스스로가 해부용으로 제공된 것이다. 그의 시신은 해부학 수업에 사용됐고 해골과 피부 조각은 박불관에 전시 됐다.

 해부학에 대한 갈망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시신 거래는 윤리적 문제를 재고하게 만든다. 해부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윤리적 문제가 양립한다. 이에서 인류사는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다.

 '콜린 솔터'의 '해부학자의 세계'에는 적잖은 해부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무려 1000년 가까이 된 그림부터 현대까지 시기별 해부의 역사와 자료가 전시된다.

 '당시에 이것을 그렸단 말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주 오래된 자료들이 너무 말끔한 상태로 보여진다. 책장이 넘어가며 인류사는 현대로 흐른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경이로움은 더 커져간다.

 꽤 아쉬운 것은 해당 시기에 우리나라는 어느 시기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는 것이다. 해부학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서양에서 공유되던 시기, 또한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이 되려 서양 의학 수준을 업치락 뒤치락하던 사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역사가 '유럽'에게 유리하게 흘럭갔던 이유가 대략 납득하게 된다.

 과학자들의 지적호기심이 윤리적 딜레마에 걸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당파에서는 상복을 3년을 입어야 하느지, 1년을 입어야 하느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수백년이 넘은 시기에 유럽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단순 '의학적 지식'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그림은 꽤 정교하기도 했고 감각적이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유머러스하기도 했다.

 해부된 시체가 자신의 살가죽을 들어 올리며 내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던지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를 전시하는 그림 등. 다양한 자세의 그림들도 있었다.

 해부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 그림을 들여다 본다. 아이도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는지, 아버지의 책을 빌려가 한참을 뒤적거렸다. 아이가 보기에도 호기심이 일어날 만큼 그림의 내용은 감각적이었다.

 이어 아이는 다음날 서점으로 가서 '해부학'에 관한 만화책 두 권을 구매했다.

 유학시절 함께 살던 플랫메이트는 오클랜드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당시 친구와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친구의 전공책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뼈이름', '근육이름'

그 온갖 이름이 '영어'가 아닌 상태로 적혀 있었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친구는 '동양인'이었다. 당췌 이름을 왜 그렇게 어렵게 지었고 그것을 어떻게 다 외운단 말인가. 요즘 '의대 열풍'이라고 하던데, 알파벳 'x'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이름들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막막하다.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은 느끼며 당시 나는 다짐했다. 나에게 '의사'라는 직업은 시켜줘도 못할 일이구나...

 참고로 책은 생각보다 쉽고 재밌으며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공부한다'는 생각을 빼고 읽으면 뭐든 재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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