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람들'
영웅은 없다. 슈퍼히어로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온다. 도망치고 싶고 두려워하고 자기 한 몸 간신히 지키는 사람들. 다만 그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먹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외면하지 않을 뿐이고, 누군가는 조용히 '아니오'라고 읊조린다. 대단한 결심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쌓여 달라진다. 정의라는 것이 꼭 큰 것을 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순간, 정의를 지키는 건 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독립운동은 쌀 한 됫박을 내놓고 독립자금을 보태던 농부, 밤마다 독립신문을 돌리던 소녀들로 시작했다. 거창하지 않지만 그런 작은 선택이 쌓여 큰 흐름을 만들곤 했다. 누군가는 몰래 벽보를 쓰고 누군가는 제 나라 말을 가르쳤다.
그저 각자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아주 작지만 분명하게 실천하는 일이다. 정의는 그렇게 쌓여왔다. 영웅이 아니어도 되는 이유,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과거 '설민석 강사'가 TV 강연에서 한 말이 있다. '유관순 열사'에 관한 이야기 중 나왔다. 사실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그 인물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순간 철없어 보이는 학생들 또한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할 '예비 영웅'들인 셈이다.
희곡 '계엄령' 속 인물들도 처음에는 평범하다. 그러다 혼란스럽고 두려워한다. 무엇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침묵이 쌓일 수록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말하고 시작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 안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에 집중한다. 그것이 반항이고, 그것이 정의다.
'페스트'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으로 도시가 봉쇄도고 모든 게 정지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도망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그 와중에 '의사'인 '리유'는 말없니 남는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그저 계속 환자를 본다. 누군가 묻는다. '도대체 왜?' 그는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알고 있다.
재미있는 건, '계엄령'과 '페스트' 두 작품 모두 '페스트'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페스트는 단순한 병의 이름이 아니다. 도시를 삼키고 전 유럽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말그대로 '돌림병'이다. 이 병이 퍼지기 시작하면 인간 안의 이기심과 절망, 두려움이 드러난다.
우리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미 한차례 경험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의심하고 봐야하는 '전염병'의 성질 말이다.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감시 당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점차 통제속에 놓이게 됐다.
'페스트' 속 사람들은 치료약도, 해답도 없다. 답없는 질문에 싸우는 두려움은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계엄령' 속 사람들 또한 감시와 협박 사이에서 어떻게든 자기를 지키려 애쓴다. 두 작품 모두 겉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 '불의'가 퍼지면 사람들은 움츠려 들고 쉬쉬하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하고 이기심과 갈등은 극으로 달한다.
정의란 그런 대중의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아주 작게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카뮈가 '정의의 사람들'이라고 부른이들은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름이 남지 않아도, 역사책에 실리지 않아도 소리내지 않아도, 어떤 상황에서도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한 사람, 말없이 자리만 같이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쩌면 '정의의사람들'은 그런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조용한 헌사다.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은 던진다.
'계엄령' 제목이 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서 무의미한 명사는 아니다.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시기다.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이 너무 빠르게 날아들고, 말 한마디에 선이그어진다. 조용한 침묵이 오히려 안전이 되는 시절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양극화된 국민적 대립이 때로는 안타깝지만 어떤 면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에서 다른 느낌이기도 한다. 물론 그 정의가 서로에게는 불편하고 때로는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모두가 조용했던 시대보다, 말이 오가고 논쟁이 벌어지는 지금은 적어도 각자가 옳다고 믿는 것을 붙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목소리의 크기나 물리력이 아니라 '태도'다. '정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조용히 하지만 확고하게 흔들리더라도 끝내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작게나마 버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름을 남기고자 정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보편적 정의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제안'처럼 들린다. 지금 당신은 침묵하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침묵은 악의 편이다.' 정의롭다고 믿는다면 작은 소리지만 읊조려야 한다. '카뮈'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모두 완벽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단 하나,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