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따로 나에게 독서 교육을 진행하지 않으셨다. 집에서 부모님은 책을 딱히 읽으시지 않으셨다. 일과를 끝내신 부모님은 TV 앞에서 노곤한 몸을 이끌고 휴식을 취하셨다. 나의 하루도 비슷했다. 학교를 가기 전에는 TV 앞에서 등교 시간까지 시간을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고 만화영화에 심취했다. 집에는 책도 많지 않았다. 책이라는 매체가 왜 필요한지 인지를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정다연 작가' 님의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부모의 결핍은 다음 세대의 축복이 된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지만, 비슷한 느낌의 문장으로 기억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자식은 자신이 갖지 못한 부재에 대해 자신의 아들에게 특히나 더 신경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 이유로 누구나 쉽게 대학까지 가지 못했던 아버지 시대는 자신들의 아들만큼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결국 부모의 결핍이 자녀의 축복이 되는 샘이다. 자신의 약점을 자녀에게 채워 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녀는 다른 모양의 결핍과 충족이 생겨난다.
나의 결핍은 '책'이었다. 누구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다. 인생 살면서, 문자로 된 정보가 그렇게 재밌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서귀포에 있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딱히 책을 좋아하시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이라는 매체와 가벼운 인연이 있어 아들에게 그저 선물하셨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저 웃긴 이야기나 모와둔 짧은 단편 이야기를 모아둔 책이었지만,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비슷한 류의 책을 다시 사주셨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처음 읽었던 책의 만족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책을 수 십 번을 반복해보다가 사촌 형의 집에 꽂혀있는 '삼국지'라는 책을 우연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빌려봤다.
비슷한 책으로 유도하시려던 어머니의 노고가 가여울 정도로 나는 삼국지라는 책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삼국지는 소설로 접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DOS에서 실행되는 고전 게임 시리즈의 소재이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고 게임을 즐겼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책을 수 십 번, 수 번을 읽고 그 뒤로 점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고르는 눈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은 '공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쯤, 친구의 권 유료 판타지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점점 산으로 가는 내용 탓에, 완독을 하진 못했지만, 총 10편이 넘어가는 장편의 판타지 소설 중 나는 3권을 읽고 또 읽었다.
'고전 읽기 독서법'이라는 책을 폈다. 책은 고전을 읽는 것을 교육함으로 아이들이 그곳에서 배울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감한다. 중학교 시절 '갈매기의 꿈'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이 당시에는 고전인 줄 몰랐다. 그리고 그 한참 전에는 '어린 왕자'를 읽었다. 역시나 그것이 고전인 줄 몰랐다. 그 책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느냐 떠올리면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그저 특이 한 소재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책 한 권을 읽더라도, 그 책에서 느낀 점이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그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드는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던 독서법은 틀렸다기보다 미숙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나는 책을 좋아했지만 사실 떠올려 보자면 기억나는 고전을 읽었던 적이 많지는 않은 듯했다. 고전은 오래전에 사랑을 받았고, 지금 또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1 달, 1년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고 사라지는 요즘의 책보다는 꾸준하게 읽히는 스테디셀러이다. 이런 고전에는 분명 많은 부분을 담고 있다. 쓰고 있던 작가가 살던 배경은 점차 역사가 된다. 고전은 역사를 가르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이뤄진 소재는 간접적 역사 교육이 된다.
불필요한 내용이 빠지고 틀어가고 추가되고 사라지며 점차 여러 나라와 사람들에게 각색되고 완성된 가장 완성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많은 감성을 나누기 때문에, 전 세계 가장 보편적인 지성인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단, 앞서 말한 데로 누군가가 가볍게 읽으라는 권유로 시작한 독서는 깊이가 있을 수 없다. 가장 좋은 독서는 자신이 알아서 하는 독서이다. 자신이 가장 재밌는 독서가 가장 좋은 독서이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어떤 것이 진짜 독서 교육인지 설명한다.
부모가 실천하지 않는 독서 교육은 독서 교육이 아니다. 대충 학원에 보내 놓고 부모는 정작 핸드폰 게임이나 TV보기를 하고 있다면 금융인 '존 리'의 말처럼 그 돈으로 책 한 권, 주식 한 주를 매달 사주는 편이 더 낫다. 학원비만 최소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가지 사용하는 교육 시스템에 자식이 남는 것은 부모의 뒷모습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농땡이 피우는 친구 녀석의 모습일 뿐이다.
책은 중반부부터 후반부까지 간단한 고전 몇 개를 소개한다. 하지만 분량의 한계로 모두 소개하지는 못하고, 부분 부분을 나눠 소개하며, 대략적인 내용과 함께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부분을 집어준다. 하지만 아예 내용을 모르고 있다면 대략적인 내용 정도는 고전을 읽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소재를 삼고 있지만, 단순 '고전'에 국한되지 않는 '독서'로 책의 소재를 확장해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이런 류의 책이 나의 책꽂이에 꽂히게 되는 것은 앞으로 자라날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된다.
책은 글자 간격과 크기가 시원시원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기 때문에 하루 몇 시간만 시간을 내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이 정도 책은 꽂혀 있어야 아이 교육에 책임 있는 부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따로 나에게 독서 교육을 진행하지 않으셨다. 집에서 부모님은 책을 딱히 읽으시지 않으셨다. 일과를 끝내신 부모님은 TV 앞에서 노곤한 몸을 이끌고 휴식을 취하셨다. 나의 하루도 비슷했다. 학교를 가기 전에는 TV 앞에서 등교 시간까지 시간을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고 만화영화에 심취했다. 집에는 책도 많지 않았다. 책이라는 매체가 왜 필요한지 인지를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정다연 작가' 님의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부모의 결핍은 다음 세대의 축복이 된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지만, 비슷한 느낌의 문장으로 기억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자식은 자신이 갖지 못한 부재에 대해 자신의 아들에게 특히나 더 신경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 이유로 누구나 쉽게 대학까지 가지 못했던 아버지 시대는 자신들의 아들만큼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결국 부모의 결핍이 자녀의 축복이 되는 샘이다. 자신의 약점을 자녀에게 채워 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녀는 다른 모양의 결핍과 충족이 생겨난다.
나의 결핍은 '책'이었다. 누구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다. 인생 살면서, 문자로 된 정보가 그렇게 재밌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서귀포에 있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딱히 책을 좋아하시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이라는 매체와 가벼운 인연이 있어 아들에게 그저 선물하셨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저 웃긴 이야기나 모와둔 짧은 단편 이야기를 모아둔 책이었지만,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비슷한 류의 책을 다시 사주셨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처음 읽었던 책의 만족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책을 수 십 번을 반복해보다가 사촌 형의 집에 꽂혀있는 '삼국지'라는 책을 우연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빌려봤다.
비슷한 책으로 유도하시려던 어머니의 노고가 가여울 정도로 나는 삼국지라는 책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삼국지는 소설로 접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DOS에서 실행되는 고전 게임 시리즈의 소재이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고 게임을 즐겼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책을 수 십 번, 수 번을 읽고 그 뒤로 점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고르는 눈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은 '공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쯤, 친구의 권 유료 판타지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점점 산으로 가는 내용 탓에, 완독을 하진 못했지만, 총 10편이 넘어가는 장편의 판타지 소설 중 나는 3권을 읽고 또 읽었다.
'고전 읽기 독서법'이라는 책을 폈다. 책은 고전을 읽는 것을 교육함으로 아이들이 그곳에서 배울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감한다. 중학교 시절 '갈매기의 꿈'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이 당시에는 고전인 줄 몰랐다. 그리고 그 한참 전에는 '어린 왕자'를 읽었다. 역시나 그것이 고전인 줄 몰랐다. 그 책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느냐 떠올리면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그저 특이 한 소재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책 한 권을 읽더라도, 그 책에서 느낀 점이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그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드는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던 독서법은 틀렸다기보다 미숙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나는 책을 좋아했지만 사실 떠올려 보자면 기억나는 고전을 읽었던 적이 많지는 않은 듯했다. 고전은 오래전에 사랑을 받았고, 지금 또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1 달, 1년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고 사라지는 요즘의 책보다는 꾸준하게 읽히는 스테디셀러이다. 이런 고전에는 분명 많은 부분을 담고 있다. 쓰고 있던 작가가 살던 배경은 점차 역사가 된다. 고전은 역사를 가르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이뤄진 소재는 간접적 역사 교육이 된다.
불필요한 내용이 빠지고 틀어가고 추가되고 사라지며 점차 여러 나라와 사람들에게 각색되고 완성된 가장 완성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많은 감성을 나누기 때문에, 전 세계 가장 보편적인 지성인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단, 앞서 말한 데로 누군가가 가볍게 읽으라는 권유로 시작한 독서는 깊이가 있을 수 없다. 가장 좋은 독서는 자신이 알아서 하는 독서이다. 자신이 가장 재밌는 독서가 가장 좋은 독서이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어떤 것이 진짜 독서 교육인지 설명한다.
부모가 실천하지 않는 독서 교육은 독서 교육이 아니다. 대충 학원에 보내 놓고 부모는 정작 핸드폰 게임이나 TV보기를 하고 있다면 금융인 '존 리'의 말처럼 그 돈으로 책 한 권, 주식 한 주를 매달 사주는 편이 더 낫다. 학원비만 최소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가지 사용하는 교육 시스템에 자식이 남는 것은 부모의 뒷모습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농땡이 피우는 친구 녀석의 모습일 뿐이다.
책은 중반부부터 후반부까지 간단한 고전 몇 개를 소개한다. 하지만 분량의 한계로 모두 소개하지는 못하고, 부분 부분을 나눠 소개하며, 대략적인 내용과 함께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부분을 집어준다. 하지만 아예 내용을 모르고 있다면 대략적인 내용 정도는 고전을 읽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소재를 삼고 있지만, 단순 '고전'에 국한되지 않는 '독서'로 책의 소재를 확장해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이런 류의 책이 나의 책꽂이에 꽂히게 되는 것은 앞으로 자라날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된다.
책은 글자 간격과 크기가 시원시원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기 때문에 하루 몇 시간만 시간을 내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이 정도 책은 꽂혀 있어야 아이 교육에 책임 있는 부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