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이기는 부모_나는 어떤 부모인가.

by 오인환

육아에 관한 책을 꽤 오랜만에 읽었다. 균형 잡힌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그간 육아에 관련한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읽지 못했던 점을 반성한다. 이 책은 전자책으로 읽었다. 사실 읽은 비중보다는 들은 비중이 더 높다. 예스 24에서 제공하는 북클럽 회원인 나는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50분의 시간이 왕복하고 나니 총 2시간이라는 독서 시간이 확보되었다. 지금껏 유튜브의 재밌는 영상의 소리를 듣거나 음악을 들었었는데, 가끔씩은 이렇게 오디오 북으로 듣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김순선 작가님의 본업은 '교사'이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아이들을 겪어봤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육아의 고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그녀의 아이들을 키우는데 애를 먹고 있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자신의 성공하고 실패했던 경험들에 대해서 기술했다. 사실 그렇다. 아마 직업이 선생님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에서는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다수의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자신의 아이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자녀는 이미 성인이다. 성인까지 사람을 만들어 놓은 사람의 성공과 실패담이다.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가 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일이다.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이라고 하는 형태에는 정답이 없다. 급한 성격과 느긋한 성격, 내성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 등 우리가 성격으로 나누는 대부분의 것들은 취향이 있을 순 있지만 정답이 있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까닦에 제대로 된 육아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체벌하는 것이 나쁜 육아법이라고 강조하는 세상이지만, 그런 우리는 실제로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게 체벌받고 자랐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은 어깨까지 손바닥을 올리고 학생의 뺨을 후려치는 행동을 거침없이 하셨다. '퍽'하는 소리가 나면서 학생이 중심을 잃을 정도로 때리는 일에는 죄책감은커녕 미안한 마음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맞고 자랐다고 나쁜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TV를 보면 바보가 된다고 보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육아법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들이 일을 나가 있는 동안, 혼자서 부모님이 오시는 시간까지 밤늦게 만화영화를 보면서 컸다. 그럼에도 우리는 형편없는 어른이 되지는 않았다.

최근, '리즈 머리'의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라는 책을 읽어서 그런지, 완벽한 육아법에 관한 환상이 없다. 사람은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다. 성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다만, 그것이 함께 생활할 룸메이트인 '나(룸메이트)'에게 얼마나 비슷한지, 그것을 맞추는 과정일 뿐이다. 아이들이 밥을 먹다 흘린다. 화가 단단히 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밥을 흘리는 것을 타박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나와 서 있을 때, 겨우 나의 허리 위치에도 오지 않는 키의 아이들은 손가락과 발가락뿐만 아니라 뇌의 크기마저 모두 자라지 못했다. 그들이 미숙의 기간을 함께 하는 것이 부모일 진데, 우리는 우리(부모)가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편하게 밥 먹기 위해 유튜브를 켜주고서, 나중에는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다고 나무라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말에 말대꾸를 한다고 구제불능아 처럼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대부분 '합리적인 이유'라기보다, '내'가 볼 '손해'를 걱정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괜히 나의 가슴이 펴지고 우쭐거려진다. 남들에게 내 아이의 교육법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 미래에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것인지, 내가 남들에게 비춰보일 타이틀을 위해 아이를 이용하는 지도 몹시 중요하다.

아이들이 아주 아기 때쯤 됐을 때, 아이들과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갔던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이런 검사를 하려면 아이들이 가만있지 못하는데, 아이들이 정서가 안정됐네요.' 의사 선생님이 그냥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내심 기뻤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이들의 정서가 진짜 안정돼서 기뻤던 것인지 말이다.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래요. 제가 키웠습니다" 하는 기만이 깔려 있었던 듯하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미래지만, 아마도 아이들이 학교 1등을 했다는 성적표를 가지고 왔다거나, 학급회장을 한다거나, 서울대를 입학했다거나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식의 좋은 성적들이 과연 아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쁜 일인지, 나의 훈장을 위해 아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내가 존경하는 법륜스님은 사람은 스무 살이 지나면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의 말씀은, 원래 모든 동물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보호할 뿐, 자녀가 성인이 되고 나면, 냉정하게는 자식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녀가 아기 일 때는, 자신보다 더 큰 상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리하게 덤비지만, 나중에 자녀가 다 크고 난 다음에는, 어미닭과 아이 닭이 함께 있는 곳에서 아이 닭을 잡는다고 해도 어미가 달려들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육아'라는 것 또한 '아이를 기르는 일'일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면서 노동력이 감소된 노년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젊은 층에 부담시키기 위해 그 관계를 끝까지 종속시키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아들이 40이건 50이건, 60대와 70대 부모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게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매해가 되면 부모에게 찾아가는 문화를 만들어 내고, 조상의 기일에는 모든 자녀가 만나 다시 한번 그 관계를 이어가기를 바랐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불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사회학적으로 발생된 관계로 인해 우리는 많은 모순을 만들어 내곤 한다.

가장 아낀다고 하는 자녀와 부모 사이에 적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자녀와 부모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가장 쉽게 적이 된다. 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도시의 누군가와의 관계보다 나쁜 관계이기도 하다. 이 관계에는 구속이 따른다. 서른이 넘은 자녀에게 결혼을 이야기하고 결혼한 자녀에게는 손자의 이야기를 한다. 이런 구속의 관계 때문에 자녀는 부모와 멀어지려고 하고, 부모는 자녀를 소유하려고 서로 대립한다.

우리가 성인으로 규정한 만 18세의 나이는 인간이 법제화한 성인일 뿐이다. '사춘기가 오면 말을 안 듣는다.'는 말과 같이 사실상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독립성을 갖추기 시작하고 누군가로부터 받는 구속을 참견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이미 성인이라는 의미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이미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시스템은 자연 시스템보다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교육적으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미 생물학적으로 성인이 된 자녀를 내 울타리로 가둬서 가두는 시기가 발생하고 그런 이유로 갈등이 생겨날 뿐이다.

나는 교육 철학이 조금 확실한 편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게 키우지 말자.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키우자'가 내 육아 철학이다. 훌륭한 사람은 타인들의 행복도에 영향을 줄지언정 자신의 행복은 2순위로 미룬 사람들이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말 그대로 스스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다만 남들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 먼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학원에 가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신만큼이나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과 섞여가며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일은 별로 내가 원하는 교육 방식은 아니다. 나는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흙을 만지고 노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학연수하던 시기, 어떤 어학원을 고르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다른 한국인 어학연수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학연수에서 어학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다. 사실 아무리 좋은 어학원이라고 하더라도, 선생 한 명만 원어민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어를 배우러 온 비영어권 사람들이다. 이 또한 레벨테스트를 통과하여 모두 나와 비슷한 실력의 소유자들이다. 그곳에 모여 안 되는 영어로 서로 배우고 알려주는 건 좋은 어학 공부가 아니었다.

차라리 어학원을 빠져서라도 밖으로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놀러 다니는 편이 훨씬 더 영어를 많이 접하는 기회다. 나는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학교와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길 원치 않는다.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돈도 벌어보고, 누군가를 가르쳐보고, 봉사활동도 해보는 등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많은 책을 읽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일이, 나랑 비슷한 애들 사이에서 문제집 하나 더 넘겨보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책의 내용과는 별로 상관없는 나의 교육관을 가지고 글을 썼다. 하지만 뭐.. 원래 나의 독후감 스타일이 그러하니 괜찮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이 책 역시, 엄청난 정답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먼저 걸어온 선구자의 경험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어제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빙수를 먹었다. 과연 아이들이 손과 발을 사용함에 조금 서툴러 아이스크림을 흘리는 일에는 약간의 참을성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훈육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쌍둥이 녀석의 머리 끝을 조금 잘라내는 커트를 하고 27,000을 지불했는데, 왜 이렇게 비싼지... 아이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미용실을 데리고 가서 커트를 해주는 것이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일까. 아니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내 욕심일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한다면, 이쁜 옷과 머리를 해주고 흘리거나 묻히고 먹을 때, 나무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흘리고 먹더라도 아이들의 미숙함에 웃으며 이해해주는 일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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