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5살 아이가 가르쳐 주는 _인간관계 상대성이론

by 오인환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빠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서로에게 말하는 시간이 많다. 알콩달콩 재미나게 놀다가 어느 순간이 오면 갑자기 난데없이 싸우고 있을 때도 있다. 어제저녁, 아이들과 놀다가 급 피곤함이 들었다. 마침 읽고 있던 '광고의 8원칙'이라는 책을 집어 들어 조금이라도 살펴보고 있었다. 갑자기 '후다닥'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율이가 울면서 나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아빠! 다율이 가 따라 해요."

이런 상황은 적지 않았다. 다율이가 하율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놀리는 상황이었다. "하지 마!"라고 하면 되지.라고 일러주었다. 하율이가 다율이를 보며 말했다. "하지 마!" 그랬더니 다율이는 배시시 웃더니 말한다. "하지 마~" 그러면 하율이는 다시 울면서 나에게 말한다. "아빠! 다율이가 또 따라 해요"

이런 아이들의 장난에는 나도 함께 장난을 쳐주곤 했다. 처음에는 하율이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그러면 다율이 바보~"라고 해봐. 그러자 하율이는 바로 다율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율이 바보~" 그러자 다율이는 가만 생각해보다가 말한다. "다율이 바보 아니야". 그리고 하율이 머리를 '콩'하여도 때린다. 이 루틴은 무한 반복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넘어갈 수 있을까? 이건 분명히 내가 동생 하고도 했던 장난이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하율이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따라 해 봐~'라고 해봐" 그러자 하율이는 바로 다율이를 보면서 말했다. "따라 해 봐~" 그러자 다율이가 말한다. "따라 해 봐~" 하율이는 다시 아빠를 보고 말한다. "아빠 다율이가 또 따라 해요 ~" 이러면 일단 상황을 일단락된다. "네가 따라 해 보라고 하니까 따라한 거잖아~" 그러면 하율이는 알송 달 송한 표정을 짓고 우두커니 서 있는다. 이런 상황이 하루에도 수 번은 일어난다. 어제는 또 비슷한 상황이다. 하율이가 울면서 뛰어오디나 말한다. "아빠 다율이가 또 따라 해요~" 나는 아이에게 "다율이 바보"라고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바보라고 할게 아니구나. 그러면 사랑해~라고 해봐"

그러자 하율이는 다율이를 보고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율이도 하율이를 보며 말한다. "사랑해~" 하율이는 다시 이른다. "아빠, 다율이가 또 따라 해요" 그러면 나는 말해준다. "아니야 하율아. 다율이가 하율이 사랑한데..." 그렇게 하면 다시 아이들은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더니 안아준다. 이런 재미난 장난을 한동안 치고 나면 기가 빨리긴 한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모든 상황이라는 것은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뜻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그리고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사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다율이 바보"라고 부르게 했을 때는 싸움으로 끝이 나던 장난이었는데 "사랑해"라고 부르게 했더니 상대도 "사랑해"로 화답하더니 화목하게 결과가 마무리 지어졌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적용되지 못할 법은 전혀 없다. 살다 보면 나를 몹시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를 미워한다고 확신이 드는 사람과 일을 했던 적이 있다. 그는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트집을 잡고 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런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의 미움이었다. 그렇게 상대의 욕을 하거나 상대가 하는 일에 불만을 품다가, 언젠가는 생각을 바꾸어보았다. 그냥 어느 날 마트에서 내가 필요한 물품을 사던 때가 있었는데,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에게 선물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름 필요해할 것 같은 물품을 내 것과 그의 것 두 개를 샀다. 그리고 하나를 선물해 줬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갔다. 그렇게 커피를 먼저 사기도 하고 선물을 몇 번을 더 보내니, 그는 휴가를 다녀오고 내 생각이 났다며 선물을 하나 보내주었다.

어차피 내가 보내거나 상대가 보내거나 같은 루틴을 반복하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하게 될 그런 루틴에서 상대나 혹은 나 중에서 하나는 이 방향을 '턴'하여 변화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 자존심의 싸움에서 내가 지는 것은 싸움에서 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작은 전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내 편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승리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바꿀 수 있다면, 내 마음을 먼저 바꾸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자. 한 번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그래도 변화하지 않으면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더 공격적으로 퍼부어보자. 나는 상대가 변할 때까지 나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간다. 나와 관계가 안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선물을 해주고 더 좋은 칭찬을 쏟아붓는다. "네가 언제까지 마음을 안 여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싸움의 주제를 바꾼다면, '네가 먼저 사과해', '네가 먼저 사과해!' 따위의 유치한 싸움에서 벗어나 더 고차원적인 전략적 싸움으로 돌입된다.

이 방법은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지만 따지고 보자면 승률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10을 퍼주고 20을 퍼주고 100을 퍼줬는데도 그저 당연한 듯 받기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전쟁에서는 나는 '패'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부터 그를 '적'이 아닌 '제삼자'로 둔다. 그를 내 인생에서 혹은 내 하루에서 차지하는 영역을 명확하게 좁혀 버린다.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내 적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 편'이거나 '제삼자'만 곁에 두고 있을 뿐 '적'을 두지 않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은 따지고 보자면 그냥 문장이 담고 있는 상투적인 의미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에서 피드백은 몹시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아이로부터 배운 것을 기록에 남기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최소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아이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씌우고 싶지 않다. 그런 물음에는 아이가 하는 대답이 정답일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아마 아이가 대답할 이런 대답은 화가 몹시 나겠지만 정답이다. 아무도 그렇게 해달라고 한 적 없다. 혼자 좋아서 한 일에 상대가 보답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나와 아이의 관계에서 내가 '희생'만 했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아이에게 피해 의식과 보상심리가 발생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배우는 점'이 있다면 되려 '고맙다'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아이에게 배우고 있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육아 일기이지만 아이에게 알려준 내용보다는 아이로부터 배운 점을 기록하는 것이 내 육아 일기의 특징이다.

삶은 배움 투성이다. 사실 우리는 오래전에 살았던 조상 님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갑자기 신석기시대의 사람을 타임머신으로 불러들여 온다면 우리는 배울 점보다 가르칠 점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우리는 위에서 배우는 것보다 아래에서 배울 것들이 훨씬 많다. 불과 100년 전까지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다. 또한 노동자에게 적당한 인권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매번 자녀들의 세상일수록 더 정의롭고 평등하며 진보해 나갔다. 우리는 밑으로 더 많이 배워야 한다. 마치 자녀보다 더 먼저 태어났다는 오만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용천부사를 지낸 '허륜'의 직책은 정 4품이지만, 허준은 정 1품 '보국숭록대부'를 받아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이 시기 '허준'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은 조선에서 '임금'뿐이었다.

과연 내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 높고, 더 많이 알며 더 훌륭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주먹도끼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지동설을 설명하는 것과 지동설을 겨우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보이져호가 저 멀리 태양계 밖에서 찍어온 사진들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우리는 전혀 퇴화하고 있지 않다. 나의 아이들도 나보다 더 진보된 인간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나는 발전하지 못한다. 내가 발전하지 못한다면, 나의 아이들도 발전하지 못한다. 서로 상생하기 위해 나와 아이들이 서로 좋은 점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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