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냥 옆에서 책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아직 책보다는 유튜브나 영상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소꿉놀이를 더 좋아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책을 멀리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 때도 사실은 있다. 하지만 부드러운 것이 더 오래간다는 말을 믿는다. 꾸준하게 집으로 오는 택배가 책이라는 사실과 책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 책으로 채워지는 잡 안 벽면들이 스멀스멀 아이들의 무의식으로 스며들기를 기다린다. 원래 막 하려고 했던 일도 누군가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뽀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인 나부터가 그렇다.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로 대체 가능한 일들이다. 그런 무의미한 일에 내 소중한 시간을 쓰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항상 말해오고 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하율이와 다율이 가 머리를 빗어준다고 머리빗과 거울을 가지고 왔다. 덕분에 보고 싶지 않았던 잠에 덜 깬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게 됐다. 이번에 책을 읽는데 참 좋은 구절이 있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태양 빛은 8분 전에 태양으로부터 출발한 빛이고 어떤 별들은 수 백 년 전에 그 지점에서 출발한 빛이라고 했다. 그곳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빛이 도달하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지금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저 별이 지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존재는 사라지지만 빛으로만 남아 수 백 광년의 우주를 날아오고 있다니, 어쩌면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도 빛의 형태로 우주 이곳저곳으로 수백 년 수천 년을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없을 때, 조금 대충 하거나, 혼자 있을 때 '악'해지는 나의 심리는 어쩌면 우주의 이곳저곳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가 벗겨진 듯한 느낌이다. 아주 먼 저 행성의 수 백, 수 천 년 뒤의 우주인의 우연히 엄청난 과학기술로 나의 일상을 훔쳐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
아이와 함께 해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은 아이들과 하는 시간에 열정을 쏟고 있는 것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를 속이려 한다 해도, 내가 했던 행동은 빛이 되어 우주의 이곳저곳으로 펼쳐져 나갈 것이다. 사실 나를 속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모든 이들을 속인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책을 한참 읽고 있는데 아이들이 내가 보고 있는 책을 휙 하고 뺏어 간다. 그리고 한참을 읽는 흉내를 내더니, 서재로 들어가 몇 권의 책을 꺼내온다. 그리고 한참 동안 지들이 책을 펴놓고 읽는 척을 한다. 내가 읽고 있는 행동이 우주의 빛처럼 은은하게 어딘가에 퍼져 갔는가 했더니, 결국 가장 가까이 있던 녀석들의 무의식 속에 안착했나 보다.
내가 읽는 행동들이 아이들의 무의식에 조금이나마 안착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아이들은 한참을 아빠 흉내를 내는 놀이를 한다. 아이들이게 문자를 읽는 것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다만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고 차분히 자기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집중해 확인할 수 있는 매체가 책이라고 알려주고 싶기는 하다.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일인 것 같다. 자기와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고 강요를 하여 종교를 강압하는 일 따위는 결국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으로 비극을 맞이했다. 예수는 총과 칼을 이용하여 제자를 양성하지 않았다. 은은한 파워가 결국은 세상을 지배한다. 히틀러의 폭정은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지만, 붓다와 예수, 모하메드의 은은함은 수세기를 지나도록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낙숫물이 바위 뚫는다는 말은 젊은이들이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언제 낙숫물이 바위를 뚫을 때까지 기다리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바위를 뚫다 부서져버리는 드릴의 힘보다 안정적으로 실패 없이 구멍을 뚫는 일에는 낙숫물이 중요하다. 실패의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실패가 끝이 되어버리는 일에서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예전 김익중 교수님의 '탈핵 한국'이라는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아무리 저렴한 에너지라 할 지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국운이 끝나는 핵발전소를 짓는 것은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정책적으로 그것에 찬성하건 찬성하지 않건을 더나, 단 한 번의 실패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버린다면, 늦지만 은은한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