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흔적이 묻어 있다는 것

by 오인환


코로나 19가 제주를 잠시 훑고 지나갔다. 비교적 안전지역이라고 부르는 제주에서는 코로나 사태를 TV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슈와도 가까웠다. 지금도 렌터카는 예약이 힘들 정도로 제주 관광은 호황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앞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왔다 갔다는 이야기가 전국 뉴스로 나왔다. 나의 책이 발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던 뉴스라 책을 읽었던 독자 님들 중 몇 분께서 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셨는지 안부 메일을 보내주셨다. 드디어 코끝까지 쫒아 온 전염병에 대해 조금 더 방심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물론 그전부터 휴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유치원에서 공식적으로 휴원을 한다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어제부터 다시 재 등원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처럼 밖으로 나와 햇볕을 밭을 일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밖에 나와서는 몹시 좋아한다.


우리 집 정원에는 꽃, 나비, 벌 등이 있다. 아이들은 유튜브에서나 보던 꽃과 나비, 벌 등을 실제로 마주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항상 갇혀 살다 보니, 코로나 블루라는 심리적 우울감은 성인보다 어린아이에게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소연도 하며 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보다 아이들이 겪을 고통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우편함에 뭐가 있나...


다율이가 살펴본다. 빨간색 우편함은 강한 제주 햇살에 페인트가 모두 벗겨졌다. 예전에는 깔끔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티끌 하나 없이 새것과도 같은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월의 흔적을 가식 없이 받아들인 오랜 것이 좋은 듯하다.


예전에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기, '만년필' 하나를 산 적이 있다. 손글씨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스스로를 정리해보자는 의미에서다. 보통 만년필은 제자로부터 선물 받거나 누군가로부터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스스로 구입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형태의 지출이라 그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만년필을 모셔두었다.


잉크가 묻어지면 반짝이던 펜촉이 시꺼멓게 변했다. 그것이 싫었다. 더러운 손으로 만년필을 잡는 일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만년필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밖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안주머니를 꺼내면서, 주머니에 있던 만년필이 '툭'하니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만년필은 떨어진 모서리가 푹하니 찌그러졌다. 속이 상했다.


언젠가는 내가 만년필을 샀던 매장을 다시 들렸다. 그 당시 내 안쪽 주머니에 그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내 만년필을 꺼내어 진열되어 있는 상품과 나의 만년필을 꺼내보았다. 나의 만년필은 그 어느 날 떨어뜨렸던 흔적을 고스란하게 스스로 품고 있었다. 나의 흔적이었다. 진열장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정체성 없는 신상품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때부터 만년필에 나의 흔적 묻히기를 했다. 나와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함께 묻혀 온 만년필은 내가 확장한 나의 자아 중 하나였다. 사실 흔적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스토리가 없을 때는 그저 의미 없는 공산품에 지나지 않다가도, 누군가가 사용했던 흔적을 묻히면 의미를 갖는다.



그렇듯 나의 흔적이 묻어 있을수록 애착이 간다. 나와 시공간을 함께하면서 나의 흔적을 묻히는 것들.. 무엇이 있을까?

자동차? 핸드폰? 만년필?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어쩌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날 내가 지었던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면서 함께 시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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