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를 오히려 망가 뜨리는 이유?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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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에서 '게으른 사람'의 특성을 '완벽주의'라고 상정한다.



'완벽주의'라면 어쩐지 빈틈이 없이 모든 일을 수월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완벽주의는 모순적이게 게으름을 낳는다.



완벽주의자는 '시작' 자체를 완성 수준으로 상정한다.



고로 '시행착오'나 '실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던 가장 최초에는 '오류'와 '시행착오'가 생기기 마련이다.



국민학교 시절, 필기구, 특히 '노트'를 사놓고 매번 첫장을 찢었던 기억이 있다. 예쁘고 깨끗하게 시작하지 못하면 바로 '부욱!'하고 첫장을 찢어내는 것이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인 것 같은데 실제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 노트는 '완벽하게 빈 노트'로 남아 있었다.



사실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 않으면 '시작'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시작은 서툴고 어색해야 한다. 자신에게 '그 서툰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되려 '시작'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무능한 완벽주의자'로 만든다.



새 신발을 사고오면 남자 아이들끼리는 '신고식'이라며 흙묻은 발로 '신발'을 밟아주는 의식을 치룬다. 그냥 서로가 괴롭히기 위해 만든 의식 같지만, 어린 아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치고 꽤 의미가 있다.



신발의 본질은 발을 보호하는 일이다. 먼지에서 보호하던 딱딱한 땅으로 부터 보호하건 차가운 공기로부터 보호하건 그 본질은 '발'을 보호하는데 있다. 고로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본질'을 정확하게 위배하는 일이다.



군인들이 피곤할까봐, 모두가 보초를 서지 않는 국가가 곧 멸망하듯, 신발의 본질이 그에 닿지 않으면 안된다. 고로 '편하게 막!' 쓸 수 있는 것이 사물의 본질이다.



최근 아무개가 전자기기를 사고 왔다. 이것저것 그것을 보호하는 악세서리를 사면서 했던 말이 이렇다.



"중고로 되팔려면 깨끗하게 써야 돼."



가끔 나역시 중고거래는 하지만 물건을 살 때부터 '중고판매'를 염두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내가 판매하는 중고품들은 시장가보다 훨씬 싸게 팔아야 한다. 나의 물건에는 흔적이 잔뜩 묻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주종관계를 분명하게 해 주어야 한다.



"깨끗하게 쓰고 싶지만! 미안한데 내가 주인이야!"


라고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내가 물건의 상태를 좋게 만드는 것보다 '물건'이 나의 상태를 좋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물론 최고는 나도, 물건도 서로가 상대를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말한 '완벽주의' 때문에 대부분 '물건'을 깨끗하게 쓰고자 하면 아예 쓰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고로 나는 노트의 첫장을 아무렇게나 막 써버린다.


책은 사자마자 함부로 대하고 연초도 '칼 같은 스케줄'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실패의 흔적을 잔뜩 만들어 놓는다.



'반복'과 '꾸준함'의 성질에 따르면 그러한 최초의 과정은 아마 앞으로 겪게 될 오류를 현격하게 줄여주고 처음에 오류를 잔뜩 만나야 빠르게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수가 있다.



'완벽'이라는 것은 '흔들림' 없는 상태다. 이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일종의 '제로섬'이기에 잔뜩 흔들려서 '부여된 흔들림의 갯수'를 모두 소진해 버려야 비로소 멈추게 되어 있다.



마치 오래 전에 감았던 태엽의 마지막 바퀴가 아슬아슬하게 움직일 때, 강제로 태엽을 앞으로 돌려 빨리 멈춰지는 상태로 두는 것처럼 최대한 빠르게 '오류'를 만들어 '완전'의 상태로 도달하는 편이 낫다.



시작은 최대한 그냥 아무렇게나 하고, 완성은 차차 만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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