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고 사용한 필명은 아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근 10년의 기간 동안 영어 이름을 짓지 않았다. 요스케, 다케시, 스즈키와 같은 일본 이름에 비해 한국 이름은 다국적 사람들에게 발음하기 어렵다. 철환, 태성, 현철과 같은 우리에게 무난한 이름들도 외국인의 입장에서 부르기 난감해 했다. 어쩌면 다양한 소리의 발음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 한글의 체계상 만들어지는 발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준하게 본명을 사용했다. 해외에서 있는 동안 친구들이나 사장님이나,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부를때 '인호안'이라고 이상한 발음으로 불렀다. 그들은 꾸준하게 영어이름을 요구했다. 외우기도 힘들고 부르기도 힘든 건 이름으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라며 영어이름라고 했다. 하지만 내 이름으로 쌓아 온 정체성을 소리로만 존재하는 가벼운 가명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또한 한국인만 Sam, John, Julie 등의 이름으로 변경해서 불린다는 점에서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뭔가 창씨개명을 요구받는 불필요한 민족주의 감정까지 들어가며 이름을 변경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이름을 짓지 않자, 친구들은 나를 Ian이라고 부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나를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까지 Ia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Ian이라는 이름의 어원을 찾아봤더니 철저히 서구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히브리어에서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역사적으로 이 이름은 로마를 통해 서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듯 했다. 난데없이 동북아시아에서 온 내가 '이안'이라고 불리는 것이 철학 없는 가벼움처럼 느껴졌다. 이름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지금 지어진 이름에는 철학이 없다. 그저 발음하기 편한 소리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고민을 하던 나는 'Ian'이라는 이름에 h를 넣어 부르라고 친구들의 휴대폰 저장 이름을 바꾸었다. 친구들은 'Ian'으로 불렀지만 문자나 메일에서는 'Ihan'으로 썼다. 시간이 지나고 페이스북 페이지나 메일을 만들 때, 큰 고민 없이 아이디로 Ihan을 사용했다. 한참이 지나고 네이버 아이디와 연동되는 블로그에서도 Ihan을 쓰고 인플루언서 페이지 등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이렇게 필명도 아니고 가명도 아니고 본명도 아닌 모호한 이름이 지어졌다. 현재 출간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출판사의 대표님은 필명 '이한'과 본명 '오인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성명학으로 볼 때 본명으로 출간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문자나 DM으로 문의 오시는 분들은 본명으로 불렀다가 가명으로 불렀다가를 반복했다. 상대가 가명으로 인사하면 본명으로 대답하고 본인을 인증하는데도 꽤 애를 먹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기로 했다. 특히 블로그 이름과 인플루언서 페이지는 보통 본명을 적지 않고 별명을 적는다. 하지만 어차피 이름이 알려진 이상 본명으로 바꾸었다. 네이버 인물검색 페이지 또한 본명으로 변경신청을 완료했다. 브런치와 인스타그램도 모두 본명으로 변경했다. 어차피 알려진 이름인데 굳이 가명이나 필명을 사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내 이름이 부르기 힘들지라도 너무 오래된 철학없는 '이한'이라는 이름을 지금이라도 서서히 줄여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