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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12. 2021

[인문] 성경을 바라보는 법_종교 밖으로 나온 성경

 당신이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우주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학과 성경은 '창조론'을 가르키는 '구약의 창세기'에 관해 굉장히 부딪친다. 이미 지동설이 사실로 받아지고 '빅뱅'의 존재를 인정하는 현대에 성경의 이야기는 얼핏 '허무맹랑'하다. '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과연 빛이 그렇게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존재했겠는가' 과학자는 성경의 문구에 과학적 접근을 들이 밀었다. 여기에서 되짚어 볼 것이 있다. 태양, 수성, 금성, 지구 등등... 공룡이 등장하지 않는 성경. 과연 성경은 과학적이며 믿을 수 있는 책인가. 다시 묻겠다.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는데, 우주의 존재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주는 존재하는가. 만약 당신이 언제든 만질 수 있는 100억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존재'를 이야기한다. 반대로 당신이 만지지 못하는 100억이 지구상 어딘가에 있다고 하자. 어딘가에는 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부자라고 여기는 워렌버핏이나 빌게이츠에게 있을 수도 있다. 그 100억은 당신에게 존재하는 돈인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사실은 엄연하게 다르다. 우주(Universe)란 쉽게 번역하기에 '만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Uni-'라는 접두사는 '하나의 통일된' 것을 뜻한다. 결국 우주란 '모든 것'이다. 당신이 눈을 뜨고 바라보는 '밖'의 세계 뿐만 아니라, 눈을 감으면 보이는 '속'의 세계도 모두 우주다. 밖과 '내면' 중 어떤 곳이 더 넓고 깊은가. 어째서 밖의 세계만 우주라고 생각하는가. 과학은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심리학 등이 있다. 우리는 왜 성경이 말하는 우주가 거시 물리학을 담았다고 확신하는가.

 

 우주는 당신이 태어나야 존재한다. 곧, 당신은 우주이며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고 당신의 탄생은 우주의 탄생이자, 당신의 죽음은 우주의 종말이다. 당신이 죽거든, 사후세계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무신론자들이 성경을 불신하게 만드는 이유다. '천국과 지옥'.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과연 죽은 이후에 사후세계가 가르키는 것은 실제 '공간'을 이야기하는가. 눈을 감고 존재하는 내면의 우주에서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은 평생을 고통스럽게 보낸다. 이는 성경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존재한다. 만물은 우주고 만물은 내면에서 존재한다. 결국 모든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는 것은 '나의 내면'에 따른다. 나는 앞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나쁜 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시 그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내 앞에 '똥'이 있다면, 그것은 퇴비가 되어 소중한 자원이 되기도 하고, 더럽고 토악질 나오는 쓰레기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만물은 나의 판단과 시선에 의해 재창조된다. 나는 만물을 창조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 우연하게 탔던 버스가 사고로 뒤집어졌다고 치자. 운이 나쁘게도 나는 다리를 다쳤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를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다. 그 하루는 다시 운 좋은 하루로 바뀐다.


 객관적인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곧 신이고, 신은 곧 우리다. 하느님(하나님)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무신론자로써 도통 믿기 힘든 논리는 이렇게 완성이 된다. 성부, 성자, 성령이 곧 하나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나는 모두 하나다. 내 앞에 있는 누군가도 다른 형태의 '나'이며, '원수'도 형태를 다르게 한 '나'이고, 길에 있는 풀 한포기도 어쩌면 '나'다. 삼위일체는 곧 판타지 소설과 같은 영혼과 '신'이라는 물리적 형태를 가진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이 크게 분리되지 않은 '내 안에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주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으며,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우주는 '나'로 시작한다.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시니라.'로 시작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디딜 수 있는 토양과 숨 쉴 수 있는 하늘이 존재하고, 어둠과 밝음이 모두 존재한다. 의식으로 여겨지는 '뭍'이 존재하고 무의식으로 여겨지는 '바다'가 존재하며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존재한다. 모두 우주가 되며, 곧 그것은 나이다. 에덴 동산이 어디에 있는지, 주소지상 위치는 어떻게 되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면, 마음 속에 선악과가 열려 있는 내부의 공간을 놓친다. 인간이 만물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게 되면 이는 곧 인생이 저주스럽게 된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와 같은 말이다. 만물이 모두 하나고 있으면 없고, 없으면 있으며, 태어나면 죽음이 있고 죽음 뒤에는 태어남이 있다.  음과 양이 서로 공존하고 떼어낼 수 없는 모두 하나의 덩어리라는 사실. 너와 내가 같고, 하나님과 예수가 같으며, 예수와 내가 같고 원수와 내가 같다는 깨닮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치를 안다는 것은 평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구원은 해탈이고 자유로워 짐을 뜻 한다. 33년의 삶을 살다가, 아기 예수로 태어남으로 누구나 삶과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이와 산자가 다르지 않으며 모두가 결국은 하나로 이어졌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것과 나쁜 것, 좋은 하루와 나쁜 하루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구별하기 시작하면서 삶은 '고통'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 부처의 이야기다. 성경은 선악과를 비유로 이 것을 이야기한다. 사탄(악마)라고 불리는 것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할 것을 말한다. 실제 SF영화에 나오는 악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의 '유혹'에 자유로움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한다. 그것이 극도인 상태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불교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처와 예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와 하나님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하나님과 싯타르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와 싯타르타도 다르지 않고, 부처님과 하나님도 다르지 않다. 성경에서 해석하는 '삼위일체'는 우주 온 만물이 모두 같다. 흔히 말하는 유일신은 그렇다. 세상 만물이 결국 하나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믿지 말라며, 다른 종교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곧 하나님이며, 그들이 믿는 신도 같은 이들이다. 즉, 어떤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모두 하나로 완전히 존재한다. 특히나 종교적인 성경 해석으로 성경을 극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생긴다. 그것을 해석하길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우민함을 만든다. 우리 한민족의 설에는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을 버틴다. 과연 이 것을 실험하기 위해 호랑이과 곰을 동굴에 가둬 두고 마늘과 쑥을 먹이는 과학실험이 얼마나 바보같은가.


 글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던 우리의 지혜는 더 쉽게 전달되기 위해 여러 형태의 이야기를 빌린다. 정령 그것이 모두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 또한 그들의 해석이며, 그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 또한 완전한 해석이다. 모든 것은 그렇게 완성된다. 신께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중 다수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올린다. 'XXX을 해주세요', 'XXX하게 해주세요.' 이 이야기는 신이 듣고 이뤄준다. 하지만 그 '신'은 곧 '나'이며, 그것을 이루게 하는 것 또한 '나'이다. 내면에 있는 '나의 의식과 무의식'은 나를 그것을 이루게 한다. 설령 그것이 이뤄지지 않아도 억울해 해서는 안된다. 신은 '신부름 센터 종업원'이 아니다. 신께 무언가를 이뤄 달라고 하기에 앞서, 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성경 해석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성경이 온전하게 나에게 의미있는 한 권의 명서가 될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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