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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26. 2022

[수필] 노동의 가치_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

 제 아무리 '자본주의'라고는 하지만,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삶을 우습게 생각한다면 반드시 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세상에 '자본'만으로 작동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자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과 자본은 정치적으로 대립되어 보이지만 서로 함께 해야 한다. 아버지는 살면서 복권을 한 번도 구매해 본 적이 없으시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수익 창출하는 간단한 매커니즘에도 거부감이 있으셨다. 땀 흘려 노동으로 얻은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비록 아버지는 '농장'을 운영하시는 '자본가'이자 농사를 지시는 '노동가'인 중첩된 위치에 있으셨지만 자본과 노동 중 '노동'의 정직함을 신뢰하셨다. 어린시절을 돌이키면 생각보다 불운하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비록 감귤보관창고를 개조해 만든 집이었으나 집이 있었고 아버지는 촌마을에서 유행에 민감하게 먼저 움직이시는 분이셨다. 버스 정류장에서 최소 1시간은 기다려야 시내로 갈 수 있는 환경에서도 운좋게 피아노, 태권도, 영어, 미술, 주산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 비록 시골에 살고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은 '학교 성적'보다 다양한 경험에 교육의 의미를 두고 계셨다. 다만 농장을 가서 언제나 흙묻은 옷을 입고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볼 때면, '저 흙묻은 옷'이 '돈을 벌기 위해' 입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략 한 7년 전, 패리스 힐튼의 남동생이 기내에서 승무원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난동을 부렸던 일이 있었다. 그는 비행기에서 승객들을 살해하겠다고 난동을 부렸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물려 받은 유산이 워낙 많은 그는 사실 사람들이 '돈' 때문에 일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 또한 어린 시절 알지 못했다. 식당에서 음식 주문을 하는 사람은 그저 항상 그 자리에서 음식 주문을 받을 것 같고, 승무원들은 언제나 비행기에서 친절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도 '빨리 집에가고 싶다'를 속으로 외치며 집으로 돌아갈 때는 무표정한 얼굴과 잔뜩 피곤한 모습으로 대충 침대에 드러누워 생각없이 유튜브 채널을 보는 직장인이라는 생각이 피부에 와닿는 나이는 그 나이가 되어서 부터다.

 회사를 취직하면 정체성을 부여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쉰다는 자체가 꾸준한 지출을 만들어내기에 우선 능력이 되는 한도에서 무언가를 할 뿐이다. 여기에 목적이란 '친절한 서비스'나 '직업철학'이 아니다. 입사일 계약서에 서명했던 급여일의 급여일 뿐이다. 그러지 않은 직업군도 충분히 많지만 사실상 사람들이 움직여지는 대부분의 이유가 '돈'이다. 참 낭만없이 진실을 말했지만 그 거북함에도 '돈은 필요없소'하기는 힘들다. 밖으로 나가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로 만난다. 그들 중에 누구는 퇴근을 하고 누구는 출근을 하며 그 역할을 서로 바꾼다. 서로가 서로의 처지인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나, 이 공감력 없는 세계는 막대하기를 원치 않으며 막대하기를 하기도 한다. 어린시절 제한된 환경에서 살았다. 나의 주변에는 '급여'를 받고 생활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통해 돈을 벌었다. 설령 월급을 받는 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그것은 추가 돈벌이일 뿐, 주말에는 농사를 지어 본업을 잊지 않고 행했다. 제주도라는 특성이 지닌 특수한 경제 관념이다. 학교를 다닐 때, 학교 선생님은 주말마다 밭에 가셨다. 제주에서 취업하면 마트 과장님도 주말에 농장으로 출근을 하고, 은행 직원도 퇴근 후에 하우스를 둘러보러 간다. 제주는 모두가 그렇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장과 취업을 함께 한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20대 초반, 해외에서 취업을 하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급여생활은 생각했던 것 보다 나쁘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이면 적잖은 돈이 통장에 쌓여지는데, 일주일 간, 내 상식선에서 작정하게 써도 언제나 남는 정도의 급여 수준이었다. 회사를 짤려도 언제든 비슷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믿음은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니 소비에 부담이 없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취업을 한 적이 있다.

 강남구 논현동에 거처를 잡고 이곳 저곳에서 일을 했다. 서울에서의 첫 직장은 '구로디지털단지'였다. 이곳에서 '급여생활'의 뼛속까지 확인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당한 대우에도 별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이상했다. 둘다 같은 조직에서 급여를 받는 급여 생활자이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인격적이지 못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참 비 인격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집과 가까운 강남구 청담동의 한 회사를 취직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은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결코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학자금을 매달 갚아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고 전세대출을 통해 신혼살림을 차린 이도 있었다. 그들은 노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돌이켜봤다. 어린시절 급여 생활을 하는 이들을 동경한 적이 있다. 1년에 한 번 목돈이 들어오는 농사와 다르게 급여는 짧게 그 주기를 나눠 돈이 들어왔다. 꽤 안정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매달 받는 돈은 더 늘어나기도 했다. 언제 태풍에 농사를 망칠지, 값은 어떻게 될지가 매년 다른 제주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러나 서울에서 한 직장동료가 말했다. '그래도 돌아갈 곳은 있네요? 저는 없어요.' 이 말에 망치로 머리를 때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해외에서 혹은 서울에서 이런 저런 도전을 해보고 실패를 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이런 옵션은 내가 조금더 과감하게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시절 흙 묻은 부모님의 작업복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땀 냄새를 언제나 묻혀 오시는 부모님의 작업복을 TV에서 나오는 깔끔한 차림의 누군가와 비교를 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가 성인이 되서 만난 몇 몇과 이런 책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앞서말한 패리스 힐튼의 남동생과 같이 철없고 공감능력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세상에는 모두가 그만한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책은 작가 님과 가족들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화안내원'이나 '배달라이더' 등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어떤 노동자들도 모두가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가 소설이 되고 시대를 대변하는 역사가 된다. 가만히 앉아서 15불로 쪼개진 회사 가치를 30불에 파는 행위보다 어쩌면 더 의미있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파이어족'이나 '경제적 자유'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이 시대에 사실 '노동'은 '급여' 이상의 가치가 있다. 100만 원을 벌거나 300만원을 벌거나, 그것은 사실상 숫자일 뿐이다. 워렌버핏은 한끼 식사에 5천 원이 넘지 않는 비용을 지출한다. 통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자산'과 '급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인생을 '역사'로 여기고 '소설'로 여기고 '작품'으로 여기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워 나갈 뿐이다. 사실상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얼마나 높은 숫자를 찍고 사라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스스로 충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면, 그 가치는 이미 아무 흔적없이 사라진 수백조 보다 비싸다. 이미 강은진 작가 님께 스스로의 인생을 공개하신 가족들의 삶이 세상에 값어치 있게 남을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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