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재미로 보는 고전문학_용소와 며느리바위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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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에는 몽금포라는 항구 어촌이 있다. 이 지역은 경치가 좋아, 지역 정경과 어부의 삶을 노래하는 '몽금포 타령'이 있다. 몽금포 금방 장연읍에서 7~10km떨어진 지역에 '용소'라는 연못이 있다. '용소' 근처에는 '며느리 바위'라는 바위가 하나 서 있는데, 꼭 그 모습이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물의 유래에 대해 꼭 이야기를 전하며 구전하곤 하는데, 그렇게 이 지역에도 '용소와 며느리바위'라는 전설이 구전되다. 전설은 대게 그 지역 민간설화인데, 즉 문학적으로 언어(言語) 중, '말'에 해당하는 '언(言)에 해당된다. 즉,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아 기록한 것이다. 이를 '구술 채록'이라고 부른다. '구술 채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승자'다. 말로 이야기를 푸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용소와 며느리 바위'는 북한 지역의 전설을 '김용규'라는 인물이 구술의 형태로 말한 것을 채록한 글이다. 당연히 실제 지명을 사용했을 것이고 현존하는 장소다. 전설은 대게 '전기적'이고 '교훈적'이다. 전기적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며 교훈적이라는 말은 생활의 지침이 될 만한 것을 가리치는 것을 말한다. 대게 전설이 그렇다. 예전 사람들은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전설'을 이용했다. 울지 않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사준다거나, 나쁜 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다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때, 가장 효과있는 방식은 '이야기'다. 예전 사람들은 문학을 즐기기 힘들었다. 대게 종이의 보급도 문제였지만, 문맹률이 높았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적었던 시기에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교훈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훌륭한 장치는 '스토리텔링'이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는 최대한 생생하고 재밌어야 한다. 따분한 어르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초현실적인 이야기라야만 사람들은 집중한다. 전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황해도 사람들은 자신들 주변에 있는 연못과 바위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교화하고 싶었던 내용은 '이상적 세계'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이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쉽게 풀어보자. 현대나 과거나 인류는 언제나 '고뇌'를 겪었다.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싯다르타'는 자신의 체험을 설파하고 다녔는데, 그것이 불교의 시초다. 어떻게 하면 정신적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것은 '관계'가 중요한 동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도 북부, 네팔지역에서 시작한 이 '철학'은 종교화되어 중국과 한반도, 일본,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 싶고, 무엇을 잊고 싶어 했을까. 가끔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함께 하고 있는 가족의 성격을 바꾸려고 하거나, 오래된 습관을 고치려고 한다. 술 먹는 남편, 공부하지 않는 아들, 잔소리 하는 아내 등 우리 주변에는 이미 '습(習)'으로 굳어진 삶을 사는 이들로 가득하다. 서로 다른 습(習)은 갈등이 된다. 대게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 일이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그것을 바꾸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빠르게 인지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꾸지 못하고 누군가의 오래된 습(習)을 바꿀 수 없으며,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 이런 인간 한계를 깨우쳐야 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은 '불교적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췌, '용소와 며느리바위'는 어떤 이야기를 통해 불교적 교훈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예전 이 지역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장재 첨지'가 살았다. 어느날은 한 도승이 나타나 장재 첨지에게 시주를 한다. 그러자 그는 중에게 쇠똥을 퍼다 준다. 이를 본 며느리가 다시 도승에게 찾아가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해 주었는데 도승은 그녀에게 한 가지 미래를 예언한다. 며느리에게 일러 준 내용은 이렇다. 산으로 도망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이라는 것이다. 여인은 아이를 들처 업고 개를 끌고 산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런 와중 뒤에서 갑자기 커다란 벼락치는 소리가 난다. 자재 첨지네의 집이 전부 없어지면서 엄청나게 큰 물이 들어 찬 것이다. 이 물은 지반을 울리며 엄청나게 솟아 오른다. 가뭄이 와도 가물지 않고 비가 와도 넘치지 않았다. 어쨌건 며느리는 등 뒤에서 울려 펴지는 큰 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도승의 말을 어긴 것이다. 여인과 아이, 개는 그 자리에서 화석으로 변해 버린다. 그렇게 '용소'와 '며느리바위'는 생겨난다. 우리는 '무의식'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 행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 경우를 많이 느낀다. 화내지 많아야지 하면서 화를 내거나, 일찍 일어나야지 하면서 늦잠을 자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이상을 꿈꾸지만 이상적 세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 한계다. '용소와 며느리바위' 그것은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필사적으로 선인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교훈일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풀어 전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이고 장소를 상품화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런 재미난 전설들은 그저 이야기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인문학적 배경을 함께 생각하면 재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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