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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내리는 회사를 떠나 공항으로

펭귄 표류기 : 홍콩편 EP1

by 펭글

표류하는 펭귄: 홍콩행 비행기에서

와-! 몇 년 만에 다시 온 공항 터미널인데, 저번에 보았던 누더기 천막을 벗고 반짝반짝 빛나는 건물이 빛나고 있어요. 3년 전에 보았던 공사장이 이렇게 멋진 터미널이 되다니! 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공항을 보고 있자니 신기해요. 새로운 기계도 들어오고, MZ세대를 위한 브랜드들도 가득하고. 남극에선 이런 거 본 적이 없는데 말이에요.


문득 몇 년 전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남극에서 헤엄쳐 오자마자 시작한 첫 직장생활, 양복을 입은 제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우와, 이게 정말 나인가-?' 하고 거울을 보며 한참을 서있곤 했어요. (펭귄들은 보통 턱시도를 입고 태어났는데, 인간세계에 와서는 매일 아침 정장을 다려입고 답답한 넥타이까지 매야 했거든요-!) 거울에 비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 이메일 한 통 보내는 데도 가슴이 콩닥거렸답니다. 모든 게 새롭고 설렜어요.


하지만 요즘은 제가 있는 조직이 마치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느껴져요. 변화는 없고, "각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라는 영혼없는 말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저처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는 펭귄들은 어느새 외딴 빙산으로 밀려나있더라고요.


전에는 '글로벌 업무'니 '유학 기회'니 하는 같은 목표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낑낑대며 헬스장도 가고, 밤늦게까지 공부도 했죠. 힘들어도 참을 만했어요. 맛있는 생선이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제가 어디로 헤엄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자존감이 빙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고, 회사 간판만 봐도 몸이 부르르 떨려요. 지난주에는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통쾌하다가도 이내 허전했어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정말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걸까-? 남극에서 헤엄치다 잘못 표류한 펭귄처럼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펭귄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헤엄치고, 걷고, 때로는 날아오르잖아요-? 어쩌면 저도 아직 제 방식을 못 찾은 것뿐일지도 모르겠어요.


비행기 타기 전, 연결 통로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이 오늘따라 흐릿하네요. 어쩌면 저도 이 공항처럼 조금씩 변화해야 할 때인가 봐요. 다만 누군가 정해준 방향이 아닌, 제가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요.


활주로를 가르는 비행기 소리가 들립니다.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네요. 홍콩에는 어떤 맛있는 생선이... 아니, 어떤 새로운 경험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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