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콩식 새해 복 받기 체험

펭귄 표류기 : 홍콩편 EP7

by 펭글

센트럴 마켓에 들렀다가 뜻밖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그냥 소품 구경이나 하려고 했는데, 한 홍콩 아주머니가 두리번거리는 저를 발견하시고 거의 끌고가다시피 테이블로 안내하더군요. 거기엔 붉은 종이 위에 황금빛 잉크로 붓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에게도 종이를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종이 위에는 '만사여의', '길상여의'처럼 복을 기원하는 글귀들이 희미하게 써져 있었죠.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몰랐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만사! 길하다! 다 좋은 뜻 아니겠습니까-? 쓰고 나서 돈 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해봐서 손해볼 것은 없으니 한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IMG_4537.JPEG


붓이 생각처럼 말을 잘 듣지 않더군요. 붓끝이 계속 갈라지고, 원하는 대로 굵기 조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인상을 쓰며 글씨와 씨름하고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뻘 아주머니가 뭐라고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등까지 두드려주시니 끝까지 써야할 것 같았죠.


하지만 글씨를 다 쓸 때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는 아주머니들 때문에 구경꾼들도 모이기 시작했어요. 펭귄이 붓글씨 쓰는 게 그렇게 신기하셨나봅니다. 부담스러워서 얼른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엔 그냥 대충 휘갈겨 써버리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두 장을 모두 완성했고, 아주머니들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어요. 제 핸드폰으로만 찍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든 직원이 와서 저와 아주머니들을 또 찍어갔습니다. 홍콩 관광청에 '붓글씨 쓰는 펭귄' 사진이 걸리겠다는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이왕 이렇게 된 거 배운 지 오래된 중국어나 써보자-! 하며 "신니엔 콰일러"를 외쳐보았죠. 잘 못 알아듣는 눈치여서 해피뉴이어를 몇 번 웅얼거리다가 도망쳤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우연이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 수 없는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홍콩 아주머니들과 사진까지 찍게 될 줄이야-! 붓글씨는 못 써도 특별한 추억 하나는 건졌으니 됐습니다. 어설픈 글씨지만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납니다. 집에 돌아가면 방문 앞에 붙여둬야겠다고, 그리고 새해엔 정말 복 많이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지 않은 길에 대하여: 홍콩대학교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