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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문자, 챗GPT는 뭐라고 답했을까?

by 라엘리아나

오랜만에 친한 지인을 만났다.
한두 달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보던 사이였는데, 이번엔 서로 바빠서 한 계절이 지나서야 만났다.

그간 못 본 시간만큼 쌓인 이야기가 많았고, 자연스레 최근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났던 남자 이야기로 흘러갔다.


호감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호감도 아닌 사람이었다. 애프터를 신청하면 한 번쯤 더 만나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애프터가 없다고 아쉬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헤어질 때 작은 선물을 주길래, 당연히 애프터의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가 보낸 문자는 예상 밖이었다. “11월쯤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말만 있을 뿐, 애프터 신청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청을 안 한 게 아니라, 묘하게 여지만 남겨둔 문장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지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문자 보여줄 수 있어요?”

특별할 게 없는 내용이라 보여줬는데, 지인은 나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 문자는 나와 만난 소감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일정이 바쁜 이유가 꽤 상세히 적혀 있었다.

지인은 그 이유가 충분히 타당해 보이고, 부정적인 뉘앙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만날 의사가 전혀 없었다면, 그렇게 신경 써서 장문의 문자를 보내진 않았을 거라고도 했다. 오히려 이후에 내가 보낸 짧은 답장이 인사치레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11월에 다시 만나자는 여지를 남긴 건데, 언니가 ‘오늘 즐거웠어요’로 끝내서 부정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일리가 있었다.
11월에 시간이 된다던 사람에게 “그럼 11월에 봐요” 대신 “오늘 즐거웠어요”로 마무리했으니, 그 남자 입장에선 내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지인이 웃으며 말했다.

“챗GPT한테 한 번 물어봐요!”


챗GPT에게 연애상담이라니?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지만, 심리 상담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궁금해졌다. 사실 이건 연애라기보다 썸 근처도 못 간 이야기인데 과연 챗GPT는 어떻게 해석할까? 결과를 보고 나니 왜 사람들이 “챗GPT가 심리상담을 잘한다”라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챗GPT는 논리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감정을 분석했고, 내 기분까지 배려하며 조심스러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의 문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존재한다고 했다. 내가 느낀 감정도, 지인이 느낀 감정도 틀린 게 아니었다. 그리고 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상황에 맞는 ‘추천 답장’까지 써줬는데 그 점이 놀라웠다. 상대의 문체와 분위기, 길이까지 완벽히 맞춘, 맞춤형 답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답장은 보냈고, 시간도 한참 흘렀다.


그런데 그 이후, 지인의 말과 챗GPT의 긍정적인 해석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문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심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뜬금없이 그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봤다. 얼마 후 도착한 그의 답장은, 나처럼 인사치레에 가까운 짧은 문장이었다.

그걸 보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사자인 내가 느낀 촉이 결국 가장 정확했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챗GPT까지 동원해 상담을 받고 문자를 보냈던 걸까? 인생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40대인데 여전히 헛발질은 계속된다.


그래도 이번 경험으로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답장 쓰기 어려울 때나 귀찮을 때는, 챗GPT를 이용하면 된다!
만남과는 전혀 상관없는 꿀팁이지만, 뭐라도 하나 건진 게 어디냐며 정신승리를 해본다.

다음 만남에는 꿀팁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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