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아님)
나는 어느새 17년 차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직딩녀이다.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한 회사를 17년째 다니고 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이어진다.
'그럼 직급도 높으시겠네요?', '연봉도 엄청 많이 받으시겠네요?"
하지만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모두 NO이다.
이 정도 연차면 부장급 이상은 될 법한데 나는 차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으며 연봉도 높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것들에 크게 불만은 없다. 직급이 높아질 수록 할 일과 책임감은 커지며 연봉 또한 마찬가지이니까 지금처럼 가늘고 최대한 길게 다니는 게 나의 목표이다. 어쩌면 나의 목표는 높은 목표를 가진 취준생이나 신입사원들에게는 희망을 꺾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늘고 길게 다니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한 직장에 정착해 17년을 다닌 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사할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오래 다닐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3년은 버텨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굳이 3년이라고 정한 건 적어도 3년은 버텨야 경력직으로 이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첫 목표였던 3년을 버티고 보니 회사와 일에 적응하게 되었고, 점점 일이 재미있어졌으며 동료들과 친목이 쌓이니 회사가 다니는 것이 즐거워졌다. 시간이 더 흘러 승진도 하고, 연봉도 계속 오르니 다닐만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0년이 넘어갔고 지금의 회사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나의 회사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위기는 찾아왔고, 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안정을 찾고, 또다시 위기가 오면 극복하고, 안정을 찾는 것이 반복되었다.
신기한 게 10년을 넘게 다녔으니 웬만한 위기는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위기는 계속 왔다.
하지만 나도 그 위기에 맞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 극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2번의 합병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속해있던 팀과 나의 직급에도 변화가 생겼고, 쉽지 않았지만 나는 겸허히 받아들였다. 합병이라는 큰 이슈에 남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들로 나뉘었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남아있느냐 나가느냐 외에 다른 어떠한 협상카드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의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남아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때 왜 회사를 전쟁터라고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내가 남는 순간 안도되었고, 불안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마음을 놓게 되었다.
합병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가는 걸 보았고, 합병이 아니더라도 퇴직하게 되는 경우는 많았다.
그래서 꼭 임원이 아니더라도 높은 연봉이 아니어도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했다. 언젠가 그만두는 날이 오겠지만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나 자신의 의지로 그만두는 게 또 하나의 목표다.
이 목표를 위해 나는 내일도 출근해서 일할 것이다.
지금처럼 성실하게 그리고 17년을 일한 노하우로 최대한 더 일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며!